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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영웅 허정웅 콜렉터
  

23년간 미술품 1만점 기증한 재일교포 하정웅 씨 

하정웅 이사장은 화가가 간절한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는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내 컬렉션이 내 그림이고,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영화의 자취가 스러진 곳에 미술이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옛 영화진흥위원회 건물은 지금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라 영진위는 부산으로 갔다. 빈 건물은 2013년 수림문화재단에 인수돼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로 꾸며지고 있다. 내달 12일 미술관 개관식이 열린다. 

수림문화재단은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1924∼2012)이 2009년 설립했다. 재단은 두산그룹이 2008년 김 전 이사장으로부터 중앙대 학교법인 경영권을 넘겨받으며 출연한 거액의 기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재단의 목표는 설립자의 인생철학인 ‘문화입국(文化立國)’의 실현이며 미술관은 그 활동의 일부다. 

미술관의 개관 특별전은 ‘무용가 최승희 사진전’으로 꾸며진다. 일제강점기 세계적 무용가였던 최승희(1911∼1967)의 사진 139점과 관련 자료, 그의 유품을 볼 수 있다. 최승희 관련 자료는 현재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인 재일동포 컬렉터 하정웅 씨(77)가 수집해 기증한 것이다. 2012년 1월 김 전 이사장이 갑자기 타계하며 이사였던 하 씨가 이사장을 맡았다. 하 이사장은 최승희 관련 자료를 포함해 지금까지 미술품과 역사 자료 1만여 점을 고국에 기증했다. 그가 기증한 미술품들의 총 가치는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 이사장은 왜 이렇게 많은 미술품을 고국에 기증한 것일까? 26일 오후 그를 미술관에서 만나 특별한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국립미술관에 미술품이 고작 350점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가 처음 고국 땅을 밟은 것은 1973년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온 부모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며 “고향에 가고 싶다”고 아들을 보챘다. 한창 돈 버는 일에 바빴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었던 덕수궁미술관을 찾았다. “이방자 여사의 자택을 개조한 건물(덕수궁 석조전)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쓰고 있더군요. 그런데 국립미술관에 작품이 고작 350점밖에 없었어요. 당시 제가 수집한 미술품만 700점이 넘었는데 말이죠. 당시만 해도 재일동포에게 ‘쪽발이’라고 손가락질하던 때인데, 왠지 모르게 고국의 현실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립미술관에 작품이 이렇게 없다니….” 한국말을 몰랐던 그는 이때부터 한국을 알기 위해 말을 배웠고 고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는 1981년 재일동포 전화황 화백의 전시회 개최 준비를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당시 과로로 쓰러져 마사지를 받았는데, 마사지사로부터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2500명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광주 시내 땅 542m²(약 164평)를 매입해 광주시각장애인협회 회관을 지어줬다. 

1993년 갓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 쪽에서도 그를 찾았다. 건물은 잘 지어 놓았지만 내부를 채울 미술품이 없었다. “100평짜리 전시 공간을 채워달라고 하더군요. 공간을 채우려면 50점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1차로 212점을 기증하겠다고 했죠. 그래야 계절별로 돌아가며 4번은 전시회를 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지금까지 광주에만 2700점이 넘는 미술품을 기증했다. 몇 해 전 미술관이 보험을 들기 위해 그가 기증한 미술품의 가격을 산정한 결과 1000억 원이 넘었다. 

이후에도 그는 기증 행진을 이어가 대전 포항 부산의 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숙명여대 등에 미술품을 기증했다. 부모의 고향인 영암군립미술관에는 샤갈의 판화 등 3700점을 줬다. 그가 기증한 미술품 중에는 피카소, 앤디 워홀, 천경자, 이우환, 미국의 리얼리즘 화가 벤 샨 등 유명 화가의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50년 넘도록 모아온 수집품의 대부분을 모국에 기증했다.  

“영암을 가보니 월출산 등 자연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한일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한 왕인 박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부모님과 왕인 박사의 고향에 뭔가 해주고 싶었어요. 부모는 못 먹고 못살았지만, 그 노동자의 아들이 문화로서 고향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마음의 빚이 있었죠. 피가 끓어올랐어요.” 

2008년에는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영친왕비의 친필일기 1권을 비롯해 영친왕 일가의 희귀자료 706점을 내놨다. 


마부가 될 뻔한 소년 

그는 1939년 일본 혼슈(本州) 북서부 아키타(秋田) 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력발전소에서 짐수레를 끌던 마부였다. 그는 공부를 잘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돈이 없어 고교 진학을 접어야 할 형편이었다. 

“(대를 이어 마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버지가 저를 위해 말을 준비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를 눈여겨본 한 선생님이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고 하시면서 펑펑 우셨어요. 조선인 제자를 위해 눈물까지 흘리시는 그분을 보고 어찌나 감동했던지…. 어머니가 쌀을 팔아 간신히 진학했어요.” 

아키타공업고를 들어갔다. 졸업만 하면 취직이 되는 지역 최고 명문학교였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동기들은 다 취업했다. 하지만 그는 이력서에 ‘조선인이며 부모가 무학(無學)’이라고 썼더니 오라는 회사가 없었다. 전임 교장이 보증을 서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하지만 순수 미술을 할 형편은 안 됐다. 그래서 회사 다니며 상업디자인 학원을 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니니 무척 힘들었어요. 학원비를 내느라 월급을 다 써서 빵 하나로 하루를 버텼어요. 그러다 영양실조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어요.”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눈은 회복됐지만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때 손을 내민 곳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였다. 당시 북한은 북송선(만경봉호)을 타면 학교도 집도 병원도 공짜라고 선전했다. 그도 북에 가려고 만경봉호 출발지인 니가타(新潟) 현에 3번이나 갔다. 하지만 한 총련 간부가 말렸다. 그 대신 재일동포의 생활 안정을 위해 은행, 조합 등을 설립하는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5년 동안 총련에서 동포들의 인권과 생활 향상을 위해 일했어요. 이 기간에 저는 인생과 사회를 알게 됐어요. 처음 민족의식이 생겼어요.” 

그는 이후 총련 업무를 그만두고 가전제품 판매업을 시작해 큰돈을 벌었다. 결혼하며 산 가전제품과 관련해 사기를 당해 졸지에 가전 판매업체 바지 사장이 됐다. 억지로 시작한 가전 판매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컬러TV가 대량 보급되며 대박이 났다.

“당시 회사원 월급이 1만 엔(현재 환율로 약 10만 원)이었는데, 컬러TV 한 대가 30만∼40만 엔이었죠. 월부 판매 등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고안해서 한 달에 2000만 엔어치씩 팔았죠.” 그는 가전제품 판매업에 이어 현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


이우환 등 동포 화가들을 지원 

돈을 벌자 그는 그림을 사들였다. 특히 형편이 어려웠던 재일동포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이며 지원했다.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 화백과도 인연을 맺었다. 1980년 한 서점에서 이우환 화백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미술 잡지를 보고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 화백의 그림에 단번에 매료됐다. 해당 잡지 500권을 사서 주변에 나눠주며 이 화백을 알렸다. 유럽 순회 전시를 앞둔 이 화백이 그를 찾아왔다. 순회전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해 700만 엔을 지원했다. 당시 이 화백은 일본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그림이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니었다. 이 순회전을 계기로 이 화백은 유럽에서도 유명해졌다.

“순회전 6개월 뒤 이 화백이 ‘그림을 받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13점을 받았죠. 그때 받은 그림 12점은 광주에, 한 점은 영암에 있어요.” 그는 지금까지 이 화백의 그림을 총 53점 샀다. 이 그림들은 광주에 37점, 영암에 16점이 있다. 그림들은 현재 한 점당 50억 원을 호가한다. 

그는 전화황, 조양규, 송영옥 등 재일동포 화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사들였다. 주위에서는 어둡고 기괴한 재일동포 화가들의 그림을 구매하는 그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재일동포들의 작품을 광주에 기증한다고 하니 ‘쓰레기를 왜 주냐’는 말도 나왔어요. 일본에서는 ‘병원에 가서 정신감정을 받아보라’는 말도 했어요. 저는 화가의 꿈을 포기했지만 이 화가들을 지원하고 싶었어요.” 


하정웅 컬렉션의 주제는 ‘기원’ 

하정웅 이사장이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주요 미술품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승희를 찍은 사진 ‘빛을 구하는 사람’(작가 미상), 재일동포 조양규 화백의 ‘목이 잘린 닭’, 마오쩌둥을 묘사한 앤디 워홀의 세리그래피,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 수림문화재단 제공
재일동포 화가들의 작품처럼 그가 좋아하는 그림은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것들이다. 그래서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그림들도 수백 점 사들였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 디아스포라(이산)를 담은 그림이 좋아요. 민족의 아픔에 대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작품들 말이죠. 전 세계적으로 제 땅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10억 명은 될 겁니다. 제가 모은 작품들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담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될 날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한때 아키타 현에 한국인 징용 희생자를 기리는 ‘기원의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말기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 측에서 인·허가를 도와줬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며 미술관 건립은 무산됐다. 

“제 컬렉션의 콘셉트를 말하자면 ‘기원’이에요. 평화에 대한 기원, 희생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한 기원이죠. 제가 모은 미술품은 한일 간의 아픈 역사 속에서 재일동포로 살아온 제 정신의 산물이죠.” 

기자는 자리를 뜨며 그에게 묻기 꺼렸던, 하지만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게 고국에 퍼주고 아깝지 않았느냐’는…. 

“지금까지 수백 번도 넘게 받은 질문이죠. 한 번도 아깝지 않았어요.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조국의 문화가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한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하정웅 이사장은…
  
·1939년 일본 아키타 현 출생 
·1988년 광주시각장애인협회 회관 지어 기증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에 미술품 212점 기증 
·1996년 제3대 재일한국인문화예술협회장 
·2001년∼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2012년 보관문화훈장 수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인쇄하기] 2016-04-30 18: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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