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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토마스 프리드먼(신동욱 역), 2000, 도서 출판 창해.


 

 

▣ 내용 소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작품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세기 말 이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세계화의 영향을 설득력 있게 보고한 칼럼으로 유명하다.

지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급속한 정보 ․ 통신 기술, 교통수단과 지식 산업의 발달에 따른 전 세계의 자본주의 시장화, 상품, 정보, 노동, 금융, 기술 시장의 단일화는 이제까지 인류가 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 ․ 경제 ․ 사회적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세계화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먼저, 빈부 격차를 더욱 심하게 벌려 놓았다. 시장의 단일화는 국가나 지역 내에서 경쟁하던 상품들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하게 만듦으로 극심한 경쟁을 초래하게 하였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는 그에 걸맞은 이익을 안겨 주었지만 생존에 실패한 자들은 삶의 기본 환경마저 박탈당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지역적 빈부 차이는 세계적 빈부 격차로 확대되었다.

‘렉서스’는 이런 세계화가 가져온 치열한 경쟁을 상징한다. 렉서스는 완벽한 합리주의, 철저한 계산, 능률과 결과 지상주의, 첨단 기술주의 등의 결과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렉서스는 세계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이에 반해 ‘올리브 나무’는 전통을 뜻한다. 이는 지역적, 가족적, 전통적 질서체계를 지닌 정서적 세계를 말한다. 우리가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고향 세계이며, 가정의 안도감, 지역적 동질감, 사적 친근함, 비경쟁적 유대감 등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늘의 세계에는 이 두 종류의 대립적 경향이 충돌하고 있다고 본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충돌, 이 충돌은 전통과 미래의 충돌, 인간과 상품의 충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글에서 피할 수 없는 두 세계의 충돌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볼 것이다.

 

핵심어 : 여섯 가지 차원(통합적 사고방식), 렉서스, 올리브 나무, 세계화, 글로벌리스트

 

▣ 파악해야할 문제들

 

- ‘여섯 개의 안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하면 ‘여섯 개의 안경’ 을 쓸 수 있는가?

-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개념의 내포와 외연을 제 시하라.

- 세계화는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

- 세계화에 의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 진정한 ‘글로벌리스트’란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는가?

 

자료 : 여섯 개의 안경

 

정보 중개의 여섯 가지 차원

 

내가 언론인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진작 이 모든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나는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이런 접근법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이는 그저 생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 어떤 기자보다 협소한 분야에 몰두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언론인이 된 후 10년 동안 나는 “이 세상 모든 부족간 전쟁의 원조” 라고 할 수 있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대결에 매달려 살았다. 처음에는 베이루트 주재 특파원으로서,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 주재 특파원으로 이 문제만 취급했다. 당시 나에게 저널리즘이란 기본적으로 정치와 문화로 구성된 2차원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중동에서의 정치는 대체로 문화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있어 세상사란 자기 자신의 뿌리를 고수하면서 이웃 나라 사람들은 뿌리째 갈아엎으려는 사람들의 생활상이었다. 그러나 내 업무는 바로 이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1988년 예루살렘을 떠났다. 중동에서 생활한 지 10년만의 일이었다. 이후 나는 워싱턴으로 가 󰡔뉴욕 타임스󰡕 외교문제 특파원이 되었다.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당시 국무부 장관 서리였던 제임스 베이커에 대한 상원의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취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했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중동문제를 공부했으며, 그때까지 거의 중동문제만 취재해 온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중동 외의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특히 상원의원들이 베이커에게 던지는 질문들 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START 조약이니, 콘트라, 앙골라, CFE(유럽 재래식 군대)의 군비통제니 NATO 등의 용어가 생소하기만 했다.

청문회장을 나설 때 내 상태는 지푸라기 하나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진 사람의 형국이었다. 기사의 제목조차 어떻게 뽑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청문회장에서 거론되었던 수많은 약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무슨 말인지조차 몰랐다. 나는 콘트라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알지 못했고, CFE는 혹시 ‘카페(café)’에서 ‘a’자가 빠진 표기 실수는 아닌가 생각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내 머릿속에 거듭 떠오른 것은, 베이커의 발언을 전하는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의 이튿날 1면 머리기사의 형상뿐이었다. 여기엔 내가 󰡔뉴욕 타임스󰡕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베이커의 발언 내용들이 자세히 씌어 있을 것이었다.

그날 나는 당시 우리 회사 국방부 출입기자였던 마이클 고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기사를 엮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중동시절의 2차원적 사고 틀만으로는 더 이상 기자생활을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4년에 걸친 꾸준한 외교 분야의 취재 활동과 베이커 국무부 장관을 따라다닌 50여 만 마일의 여행 끝에 나는 기존 정치와 문화차원에 또 다른 차원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국가 안보 내지는 세력 균형이란 차원이었다 이것만 군비 축소, 초 강대국끼리의 경쟁, 냉전 연합체제 유지관리, 권력의 지정학 등의 이슈들로 구성된 분야였다. 이 같은 새로운 차원이 보태지자 종래의 내 2차원적 세계관은 크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베이커 국무부 장관과 함께 이스라엘로 날아가고 있을 때였다. 국무부 장관 전용기가 텔아비브 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잠깐 궤도를 이탈해 착륙하기 전 웨스트뱅크 상공을 크게 한 바퀴 날았다. 나는 이때 창 밖을 내다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곳이 아니야. 물론 흥미로운 곳이긴 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아.”

국무부 출입기자를 거쳐, 다행스럽게도 매우 짧은 기간 백악관 출입 기자를 지낸 후(백악관 출입 기자를 언론인으로 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1994년 또 하나의 새로운 렌즈를 껴야 했다. 󰡔뉴욕 타임스󰡕에서 외교 정책과 국제 금융을 종합해서 다루는 새 임무를 맡은 것이다. 이는 냉전 종식과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금융과 무역이 국제 관계 형성에 갈수록 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나 󰡔뉴욕 타임스󰡕에게 있어서나 경제 정책과 국가 안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시도는 이때 처음 해보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물론 기술적으로 내 보직은 ‘재정 및 무역 특파원’ 이었다. 하지만 신문사측은 국무부와 백악관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이 모든 영역을 종합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같은 취재 영역을 ‘통상외교’ 또는 ‘외교와 금융’ 등 여러 가지로 불렀다.

이렇게 외교와 금융이 교차되는 영역에 서게 되었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냉전 체제 종식과 함께 바로 이 교차 영역이 뉴스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직 누구도 이 신천지를 발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언론계에는 이미 수많은 금융 분야 기자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 안보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언론계에는 또한 외교 전문 기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무역이나 금융, 또는 외교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대통령이 한 이야기와 행동에만 신경 썼다.

내게 있어 기존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국가 안보 차원에 새로이 금융 시장차원을 더하는 것은 요술 안경을 쓰는 것만 같았다. 이 안경 덕분에 나는 갑자기 4차원의 세계를 투시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예컨대 전에는 결코 뉴스로 인식되지 못했을 많은 것이 뉴스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또한 전에는 결코 파악하지 못했을 모종의 인과관계가 일련의 사건을 연속적으로 일으키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갑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세계적 지도자와 각국 정부가 하려는 일들을 방해하거나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 나는 4차원 투시력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점차 또 새로운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즉, 시장이 새로운 권력기구로 부상하도록 이끌고, 국가와 국가간,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등 진정으로 세계화의 심장부에 위치한 핵심 중의 핵심은 바로 인터넷부터 위성 통신에 이르는 기술 진보라는 점이었다. 개인과 기업들, 그리고 각국 정부에 온갖 새로운 방식으로 힘을 부여하는 이들 기술을 더 잘 이해하지 않고서는 독자들은 물론 내 자신조차 세계 정치 지도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음을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느 지역사회에서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항상 중시된다. 그러나 ‘전화망을 쥐고 있는 자와 그들의 일하는 방식’ 또한 어느 지역 사회나 중요한 사안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가 얼마나 큰 규모의 군대와 핵 폭탄을 갖고 있는가는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인터넷 통신 대역폭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차원, 즉, 기술의 차원을 더한 5차원 기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세계의 주요 수도들, 즉 모스크바, 베이징, 런던, 예루살렘 등의 명단에 실리콘 벨리를 추가해야 함을 의미했다. 내게 있어 이들 세계의 주요 수도는 현실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1년에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할 곳들인데, 여기에 실리콘 벨리를 꼽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화 체제가 작동되는 양태를 자세히 관찰하면 할수록 나는 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존 밀림을 납작하게 뭉개 버리는 경제 개발과 온 세상을 디즈니 천국 일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동조화(同調化)의 괴수라고 할 바로 이 세계화는, 그대로 방치될 경우 인류 역사상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매우 빠른 속도로 환경을 파괴하고 고유 문화의 뿌리를 뒤엎어 고사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경제 개발을 최대한 제약하고 세계화에 재갈을 물리려는 무시할 수 없는 반발 세력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이런 세력들은 환경 차원의 시각 없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정보 중개에 제6 차원, 즉 환경주의를 추가했다. 그리고는 내 여행 일정에 부수적으로 환경 여행을 더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생태계가 세계화에 의해 어떻게 영향 받고 있고, 생태계 파괴 또한 세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가기 위해서였다.

 

진정한 글로벌리스트가 필요한 시대

 

이제 6차원까지 셈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다음 차원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뭔가 새로운 차원이 부가되면, 이것 역시 새로이 취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른바 자칭 ‘글로벌리스트’ 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그룹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내가 이 학과에 속한다고 본다.

이는 내가 ‘리얼리스트’가 아님을 뜻한다. 리얼리스트는 국제 관계의 모든 내용이 패권 추구와 지정학적 위치로 설명될 수 있으며, 시장은 중요치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나는 ‘환경주의자’도 아니다. 환경주의자는 세계의 운명을 오직 환경 보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이해하고, 환경보호를 모든 행위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있어 개발은 중요치 않다. 나는 ‘기술주의자’도 아니다. 실리콘 벨리에서 흔히 발견되는 기술주의자들은 인류 역사가 마이크로칩 발명에서 시작되었으며, 인터넷이 미래 국제 관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지정학은 중요치 않다. 나는 ‘근본주의자’도 아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의 행태가 모종의 근본적인 문화적 또는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기술은 중요치 않다. 나는 그렇다고 ‘경제주의자’도 아니다. 경제주의자들은 모든 세상사를 다 시장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정치 세력들의 관계나 문화는 중요치 않다.

나는 새로운 세계화 체제가 본질적으로 새 세상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새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앞에서 설명한 정치, 문화, 국가안보, 금융시장, 기술, 환경 등 여섯 가지 모든 차원에서 중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오늘날 국제관계의 면모는 항상 이 여섯 가지 차원의 모두 한꺼번에 교차되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각기 다른 상황, 다른 시점, 다른 시각에 각기 다른 비중을 두어 세상사를 보아야 한다. 사방에 흩어진 개개의 점들을 연결해 입체화할 줄 알고, 세계화 체제를 바로 인식하며, 이로써 혼란스런 세계에 일말의 질서와 체제를 도출해 내는 유일한 방법을 글로벌리스트가 되는 것뿐이다.

세계화 시대에 대한 나의 관점이 틀렸다면, 그 결함은 쉽게 드러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특히 언론인과 전략가는 반드시 글로벌리스트로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언론인들에게는 세상사를 설명할 책임이 있고, 전략가들에겐 세상사를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원에서 파악되는 각기 다른 세상과 모든 기관들이 갈수록 더 이음새 없는 인터넷 망으로 긴밀히 연결되어지는 만큼, 언론인과 전략가는 모두 틈새 없는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언론계나 학계 모두 지극히 협소한 전문분야로 나뉘어 매우 좁은 시야에서 사고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 현실세계가 실제로 그처럼 단조롭고 명쾌하게 세분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또한 국내와 국제의 경계선, 정치와 기술의 경계선 등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도 이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클린턴 행정부는 오래 전부터 일본에 대해 특정 상품군에 대한 명사적 관세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틈만 나면 협박해 왔다. 그러나 미키 캔터 무역대표부 대표가 드디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만큼 범정부적 차원의 지지를 얻어냈다고 믿은 순간, 그리고 대통령이 드디어 일본 경제에 일대 찬물을 끼얹는 실력행사에 들어가려는 순간, 그때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발 물러서야만 했다. 나는 이와 관련해 백악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상사해 본다.

 

캔터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와서 의자 하나를 당겨 앉으며 말하기를, “대통령 각하, 그 망할 놈의 일본이 또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또 한번 우리한테 엉기고 있어요. 그들이 우리 수출품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제대조치를 취합시다. 대통령 각하, 그것도 큰놈으로 말입니다.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더 이상 그들이 버틸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각하, 그렇게 하면 또 노조들도 크게 반길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키, 너무나 옳은 말씀이오. 그대로 시행하시오.”

그러나 캔터가 도쿄에 한 방 먹이기 위해 막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 옆문으로 들어온다.

루빈이 말한다. “대통령 각하, 만약 우리가 일본에 대해 무역제재 조치를 취하면 달러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일본인들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우리 국채를 마구 팔아치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국내 금리가 올라갈 것입니다.”

이에 대통령은 문에서 반쯤 빠져나간 캔터를 돌아보며, “미키, 미키, 미키! 잠깐만 이리 와 봐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어.” 라고 외칠 것이다.

며칠 후 캔터는 다시 대통령을 찾을 것이다 그는 전과 똑같이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통령도 진정으로 확신을 얻는다.

대통령은 이에 캔터에게 말할 것이다. “나도 더 이상은 저 일본이 하는 짓을 지켜볼 수가 없군. 미키, 제재조치를 취합시다. 일본 열도에 어뢰를 한 방 먹이시오.”

그러나 며칠 전처럼 이제 막 캔터가 행동을 들어가기 위해 방을 나서는 순간, 이번에는 윌리엄 페리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의 옆문으로 들어온다.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대통령 각하. 우리가 지금 일본에 제재조치를 취하면 어찌됩니까? 일본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사용기간 연장에 관한 재협상을 거부할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에 지어 주기로 한 경수로 건설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경수로건설은 대부분 일본 돈으로 꾸려 나간다는 계획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대통령은 화들짝 놀라며 이제 막 방문을 나선 캔터를 즉각 불러 새울 것이다. “미키, 미키, 미키!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이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어.”

 

이상은 물론 가상의 스토리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실제상황과 매우 흡사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독자들에게 적절한 때 포착해 보도할 기자는 무역전문 기자나, 금융전문 또는 국방전문 기자가 아니라 이 세 영역 모두를 오가며 중개하는 기자일 것이다.

예일 대학의 국제관계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교수와 존 루이스 가디스 교수 등은 미국의 차세대 전략가들을 양성해 내는 일을 자신들이 책무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단순히 어떤 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글로벌리스트로서 사고할 수 있는 새 세대 전략가들을 키워내기 위해 교육과정을 어떻게 확대 개편해야 하는지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이런 뜻있는 노력을 해온 가디스 교수와 케네디 교수는 최근 공동 저술할 어느 한 평론에서 “아직도 너무나 많은 국가들에서 너무나 편협한 사고의 전문가들이 여전히 자주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분석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들은 이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들은 전체 가운데 일부의 그림을 그리라면 그야말로 완벽하게 능력을 발휘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일의 우선순위를 곧이곧대로 정해놓고, 이를 개별적으로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추진해 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진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이들은 너무나 자신 있게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숲 속에서 길을 잃고는, 그러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한다.

과거의 위대한 전략가들은 나무뿐만 아니라 숲 또한 지속적으로 한눈에 넣고 일을 진행시켰다. 그들은 ‘전문인’이 아니라 ‘만능인’으로서, 생태학적 관점까지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미줄 네트워크임을 알고 있었다. 즉, 이쪽에서 모종의 조정이 행해지면 저쪽에도 그 여파가 언제고 미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만능인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각 대학이나 싱크 탱크의 추세는 갈수록 더 협소한 분야로 전문화되어 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아는 것보다 어느 한 단일 분야에서 심도 있게 기능하는 것에 갈수록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전체를 알지 못하고는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각종 수단이 종국적으로 어떻게 수렴되어 목적을 달성하고 또는 무산되는지 전혀 감각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무슨 전략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걱정이다. 왜냐하면 전략을 갖고 있지 않은 자는 그저 둥둥 떠다닐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이 점을 깨닫고 세계화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그 동안 철저한 비밀에 싸인 채 세계를 대상으로 감청업무를 수행하며 온갖 정보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온 국가 안보국(NSA)이 1990년대 후반 들어 재부 정보처리 방식을 변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관은 냉전 당시 내부 정보처리 방식의 좌우명이었던 ‘알 필요(need to know)’를 ‘공유할 필요(need to share)’로 변경했다. 이는 무언가 알 필요가 있는 것에 관해서 단지 관련된 정보만 들쳐보면 된다는 옛 방식이 진부해졌음을 인정한 결과였다. 이는 또한 각자가 알고 있는 조그만 조각들을 모두 함께 공유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의 가장 지적인 정보의 원천이 변하고 있음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듯하다. 내가 이제 가장 중시하는 정보 원천은 더 이상 국제관계 전공 교수도 아니고, 국무부 외교관도 아니다. 그보다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갈수록 더 중요한 취재원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헤지펀드 매니저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세계에서 글로벌리스트로서 유일하게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사람들은 글로벌 문제에 대해 매우 해박할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여럿 개 모든 차원에서 정보를 중개하고 교합을 맞춰 보는 선천적 능력과 의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최고수 가운데 한 명이 얼마 전까지 조지 소로스의 파트너였던 로버트 존슨이다. 그와 가진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 한 가지 차이점은 그가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데 비해 나는 글을 쓴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최종행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둘 다 동일한 중개과정을 거친다.

6차원의 정보 중개가 세계화 체제를 들여다보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를 설명하는 최상의 방법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 책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득 담으려 노력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세계화는 너무나 복잡한 시스템이어서 하나의 포괄적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는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나는 어는 날 오후 골드만 삭스 인터네셔널의 로버트 호매츠 부회장에게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는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주 능숙하고도 즉각적으로 지적해 주었다.

“세계화를 이해하고 또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지적인 방랑자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의 세계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정교하게 설정된 자기만의 영역이란 게 없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일신교가 모두 유목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 곳에 오래 눌러앉아 사는 정착민들의 경우는 주변의 암석 또는 나무들에 대해 온갖 신화를 개발해 냅니다. 그리고는 신이 바로 그 암석이며 나무에 각기 다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랑자들은 항상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겪습니다. 그들은 신이 어느 한 돌덩어리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님을 진작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한 진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또는 한 오아시스에서 다른 오아시스로 이동해 갈 때 단순한 옛날이야기들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기자들이나 칼럼니스트나 정치가들이나 모두 시청, 의사당, 백악관, 펜타곤, 재무부, 또는 국무부 등을 자신의 ‘시장’으로 여기며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의미 있는 시장은 지구라는 행성 하나뿐이다. 그리고 현재 이 시장에서는 기술, 금융, 무역, 정보 등이 범세계적으로 일대 통합되고 있다. 이런 통합현상은 사람들의 급여와 한 나라의 금리수준, 생활수준, 문화양식, 고용 기회, 전쟁 그리고 기후 패턴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세계화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어느 시스템보다 한꺼번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전 캘리포니아 공대 이론물리학자 교수이자 산타페연구소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머레이 겔만은 일찍이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정보 중개인의 접근방식과, 과학자들이 복잡한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취하는 접근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어느 한 강연회에서 지적했다. 옳은 지적이다. 실로 오늘날 세계화보다 복잡한 정치 시스템은 없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복잡한 사고체제를 갖춘 언론인과 전략가가 필요하다. 겔만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이 지구상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한번 시작되자, 지구의 물질적 진화와 생물적 진화 그리고 인류의 문화적 진화가 어우러지며 지속적으로 복잡성을 더해 가는 시스템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이 진화과정은 이제 너무나 많이 진척되어, 인류는 이제 엄청나게 복잡한 생태계의 문제들과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공략하고자 시도할 때면 우리는 자연히 이들 문제를 관리 가능하도록 좀더 작은 조각들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용한 관행이다. 하지만 매우 심각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비선형적 체제, 특히 복잡한 것을 다룰 때는 한 부분 한 부분, 또는 한 단면 한 단념씩 고려한 후 이것을 그저 단순 합계해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의 행태는 이러하고, 저 부분의 행태는 저러하다면서 이를 다 합하면 전체가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따라서 복잡한 비선형 체제를 대할 때는 이를 우선 여러 조각으로 분해한 후 각 부분에 대해 탐구하고, 그리고 반드시 이들 여러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까지 연구해야만 한다. 오직 이 길만이 전체를 묘사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바로 글로벌리스트들이 추구하는 내용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제 더 많은 학생들, 더 많은 교수들, 더 많은 외교관들, 더 많은 언론인들, 더 많은 스파이들과 더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글로벌리스트로서 훈련되고 육성되어야만 한다.

겔만은 “우리에겐 전체 체제를 진지하고도 전문가답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역설했다.

“이때의 시선은 그야말로 노골적이고도 직선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부분 하나하나를, 또는 모든 상호작용의 한 줄기 한 줄기를 모두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언론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불행히도 학계와 관료사회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대단히 많은 분야에서 명성과 특권을 주로 특정 문제의 매우 협소한 단면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공부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이는 무역, 기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큰 그림에 대한 논의는 고작 칵테일파티에서의 안주감 정도로 치부된다. 이는 그야말로 어이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비단 협소한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복잡계 속에서 두드러진 성호작용을 탐지해 내고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또한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한때 칵테일파티의 시시한 소재로 간주했던 것이 이제는 매우 중대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나의 칵테일파티로 한번 가보자.

 

렉서스 대 올리브나무’ 구상의 탄생

 

세계화가 냉전 체제를 대체한 국제 체제임을 인식했다고 해서 오늘날의 세계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로 그렇지 않다. 세계화는 이제 막 세상에 출현한 새로운 현상일 뿐이다. 만약 세계가 마이크로칩과 시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세계화라는 요인 하나만 가지고도 세상사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는 마이크로칩과 시장뿐만 아니라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온갖 독특한 습관과 전통, 저마다 다른 간절한 소망 그리고 짐작조차 가지 않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세상사는 인터넷 웹사이트와 같은 새로운 것들과, 요르단 강변의 옹이 박힌 올리브나무와 같은 낡은 것들 간의 상호작용을 언급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1992년 5월, 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나는 처음으로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속 29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초밥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며 도쿄 서쪽에 위치한 아이치 현의 도요타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도요타 자동차의 최고급 승용차 렉서스를 만드는 공장에 대해 취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도요타 시 외곽에 위치한 공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날 방문은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당시 이 공장에서는 66명의 사람과 310개의 로봇이 매일 300대의 렉서스를 생산하고 있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단지 몇 명만이 실제로 볼트와 너트를 조립하거나 혹은 용접 등의 생산 업무에 종사하고 있을 뿐, 사실상 거의 모든 일을 로봇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장 내 자재운반도 로봇 트럭 몫이었다. 이 로봇 트럭은 앞에 사람이 있을 겨우 스스로 이를 감지해 길을 비켜달라고 “삐, 삐, 삐” 소리를 냈다.

나는 특히 자동차 앞 유리를 붙이는 접착 로봇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로봇 팔이 유리창 주변을 돌아가며 뜨거운 액체 고무를 접착시키는데, 조금의 오차도 없이 거의 완벽하게 일을 해냈다. 더 신통한 것은 최종 마무리였다. 고무를 다 접착시킨 로봇의 손가락 끝에는 항상 조그만 고무방울이 달랑 매달렸는데, 한 차례의 작업이 끝날 때마다 로봇 팔이 큰 원을 그리며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가는 쇠줄을 스쳐 지나가게 하며 마지막 찌꺼기마저 완벽하게 떼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이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얼마나 많은 기획과 설계 그리고 기술력이 동원되었겠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로봇 팔이 정해진 접착 일을 하도록 한 것도 그렇지만, 그 후 그 팔을 원형으로 한 바퀴 돌리며 가느다란 쇠줄을 스치도록 해, 공정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찌꺼기 처리까지 완벽히 끝낸 다음에 다시금 작업을 시작하도록 만든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그야말로 감탄했다.

공장을 다 돌아본 뒤, 다시 도요타 시로 돌아가 도쿄행 신칸센에 다시 몸을 실었다. 신칸센은 영어로 총알 열차(bullet train)라고 하는데, 나는 그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생김새도 총알 같았지만, 그 속도 또한 총알같이 빨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차 안에서라면 항상 구입할 수 있는 초밥 도시락을 먹으며, 나는 그날 나온 󰡔헤럴드 트리뷴󰡕을 펼쳐 들었다. 제 3면 오른쪽 맨 위에 실린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국무부 브리핑 관련 기사였는데, 마가렛 터트와일러 대변인의 발언이 중동지역의 감정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마가렛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이에 앞서 1948년에 있었던 국제연합(UN)에서의 한 결의안에 대해 자신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이야기했었다. 지금 그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랍인과 이스라엘인들 모두를 분노케 했던 발언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이 UN의 결의안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스라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결국 시속 290킬로미터로 달리는 세계 최신의 기차 안에서 지구상 가장 낙후된 세상의 이야기를 일고 있었던 셈이었다.

내가 방문했던 렉서스 공장의 일본인들, 또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기차를 만든 일본인들은 로봇을 활용해 세계 최고급 승용차를 만들고 있었다. 반면 󰡔헤럴드 트리뷴󰡕의 제3면 머리기사에서 보듯, 내가 베이루트와 예루살렘에 살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같이 지냈고, 그래서 내가 아주 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아직도 올리브나무를 놓고 서로 제 젓이라며 싸우고 있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실제로 냉전 이후 시대의 꽤 좋은 상징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반쪽은 더 좋은 렉서스를 만들고자 노력하며 냉전으로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반쪽은 아직도 누가 어느 올리브나무의 주인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한쪽은 세계화 체제에서 번영을 구가하고자 현대화에 전력하면서 경제체제를 합리화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과거사를 매듭짓지 못하고 그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올리브나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들은 곧 우리의 뿌리를 의미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존재의미를 말해 주며, 우리가 한 곳에 정착하게 해줌으로써 마치 배의 닻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올리브나무는 우리가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민족과 종교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상징한다. 올리브나무는 또한 우리가 이방인들과 마주치거나 협력할 때 집단에 속해 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갖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도 가정의 따뜻함이라든지 개성 추구의 기쁨, 독특한 의식행위에서 얻는 동질감 그리고 사적 인간관계에서 얻는 친근함 등을 갖게 해준다.

우리가 때때로 우리 자신의 올리브나무를 지키기 위해 아주 극렬한 싸움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리브나무는 좋게 해석할 경우, 식량만큼이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자긍심과 소속감을 안겨 준다. 바로 이 때문에 국가라는 존재는 비록 약화될 수 있어도, 지구상에서 결코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국가는 최후의 올리브나무인 것이다. 언어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그리고 역사적으로 국가는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표현해 주는 최후의 보루다. 사람은 제 홀로 부자일 수 있다. 사람은 또한 자기 혼자서 똑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홀로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올리브나무가 뙜든 그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럴드 쿠쉬너 랍비는 이 같은 진실을 그의 저서 󰡔누가 신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책에서 아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컬럼비아의 저술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00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에서 어느 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모든 것을 쉽게 망각하게 만드는 아주 해괴한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염성 건망증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먼저 시작된 이 전염병은 차츰 마을 전체로 확산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아주 흔한 일상용품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도록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이 병에 아직 걸리지 않은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모든 사물에 이름표를 붙여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이것은 탁자입니다.’, ‘이것은 창문입니다.’ ‘이것은 젖소입니다. 매일 아침 젖을 짜주어야 합니다.’ 등의 이름표를 달아 나갔다. 그는 또한 마을 입구 도로변에도 두 개의 커다란 표지판을 세웠다. 이 중 표지판에는 ‘이 마을의 이름은 마칸도입니다.’ 라고 썼다. 그리고 좀더 큰 표지판에는 ‘신은 존재한다.’라고 썼다.


내 생각에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결국 모든 인간은 언제간 인생 역정에서 배운 것을 몽땅 다 잊어버릴 수 있고, 아마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다. 수학, 역사, 화학공식은 물론, 우리가 처음 태어나 살았던 곳이나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꾸린 첫 집의 주소와 전화번호 따위를 모두 잊어버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모두 잊어버려도 별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으며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도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가장 심오한 인간성마저 모두 상실해 버리게 된다는 점이 이 소설의 주된 메시지가 아닐까?

이토록 올리브나무는 우리가 존재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올리브나무에 대한 집착이 지나칠 경우, 이는 남을 배척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럼으로써 인위적으로 특정 집단만의 정체성과 연대감 그리고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이단 종교집단인 옴 진리교, 또는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 부족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기 올리브나무에 대한 극단적 집착은 종종 인종 청소까지 비화된다.

누가 어떤 올리브나무를 소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세르비아족과 모슬렘족 사이의 갈등,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리스인 사이의 갈등은 너무나 살기등등하다. 이는 이들 간의 갈등 원인이 바로 해당 지역세계에서 누가 자리를 잡고 누가 쫓겨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 갈등의 저변에 깔린 논리는 이러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이 올리브나무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약 다른 자가 이를 확보하게 되면 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나의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통째로 상실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신발을 벗고 편히 누워 쉬지 못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자기 집을 박탈당하는 것만큼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것도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를 위해 죽고, 이를 위해 살인하고, 이를 노래하고, 이에 대한 시와 소설을 쓴다. 자기 집을 갖고 있다는 감각과 소속감이 상실되었을 때, 인생은 척박하고 뿌리가 없어진다. 그리고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꽃씨 신세로는 땅에 뿌리내려 번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렉서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 역시 올리브나무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이면서도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생계유지와 생활수준의 향상, 번영, 근대화 등 오늘날 세계화 체제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간 욕망의 전개 모습 그대로다. 렉서스는 오늘날 우리가 더 높은 생활수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꼭 갖춰야 할 글로벌시장의 발아와 성장, 금융기관 그리고 컴퓨터 기술 등의 대표적이다.

물론 개발도상국 내의 수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아직도 이와 다른 방책을 쓰고 있다. 즉,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오고, 맨발로 황소를 몰아 밭을 갈고, 머리에 장작을 이고 수십 리 길을 오가고 있다.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갈수록 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사는 수천 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물질적 풍요와 근대화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글로벌 시장에서 장을 보며, 새롭게 출현한 네트워크 기술사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선진국내에서도, 새로운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는 경로나 정도, 세계화 체제를 특징짓는 각종 기술의 활용도, 또 그로부터 획득되는 혜택 등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사람들 간의 편차가 크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경제활동 도구이고, 모든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거기에서 영향 받고 있다는 사실에는 하등 변함이 없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우 오래 전부터 있어온 주제의 현대판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이야기중의 하나, 즉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야기의 현대판으로 볼 수 있다. 히브리 성경 창세기에 이렇게 씌어 있다.

“카인이 그의 동생 아벨에게 말했다. 그리고서 이들이 밭에서 일할 때, 카인이 일어나 동생을 향해 다가가 그를 죽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내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에 카인이 답하기를, ‘저는 모릅니다. 제가 동생 돌보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어떤 짓을 했느냐? 네 동생의 피맺힌 목소리가 땅 속에서 나를 향해 울부짖고 있다.’ ”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카인이 과연 실제로 아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히브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카인이 그의 동생 아벨에게 말했다” 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이들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지 못한다. 실제로 어떤 대화가 오갔길래 카인이 그토록 화가 나서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나의 신학 스승인 쯔비 막스 랍비는 성경에 관한 랍비들의 평론 가운데 하나인 라바(Rabbah) 창세기판에 실린 학설을 가르쳐 주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설명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두 형제가 이브라는 여성을 놓고 서로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 세상에 단지 한 사람의 여성, 즉 그들의 어머니만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두 형제 가운데 누가 어머니와 결혼할 것인지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적인 만족감과 종족 번식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카인과 아벨이 당시 기본적으로 세상을 둘로 나눠 소유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카인은 모든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를 “카인은 토지 경작자가 되었다.” 고 표현하고 있다. 한편 아벨은 모든 동산과 가축을 소유했다. 성경에서는 이를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다.” 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 해석에 따르면 카인은 아벨에게 양을 데리고 자신의 땅에서 물러가라고 말했다. 이는 영토분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카인은 아벨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경제개발과 물질적 성취물을 두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설명은 이 두 형제가 이미 세상만사를 완벽하게 나눠 가지고 있던 것에서 시작된다. 다만 단 한 가지 중요한 사항만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즉, 그들의 독특한 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할 신전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두 형제 모두 이 신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자 했고, 또 서로 이 신전이 가지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도록 지어지기를 원했다. 둘 다 그 신전이 자신이 올리브 밭에 있기를 바랐다. 즉 이들은 정체성의 문제를 놓고 다투었다. 누가 가문의 정통성을 계승할 것인가를 놓고 싸웠던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랍비 현자들의 이 같은 세 가지 설명은, 인간의 행동에 아주 기본적인 세 가지 동기부여 요인이 있음에 말해 준다. 즉 성적인 요구, 생계유지의 욕구 그리고 정체성과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 세 가지 요인들 가운데 성적인 욕구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 욕구를 다루고 있다.

내가 정보의 중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의 중개는 세상을 투시해 보는 렌즈를 제공하지만, 렌즈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렌즈를 통해 무엇을 보고, 아울러 왜 보고 있는가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창세기 때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해묵은 욕망, 즉 물질적 욕구와 귀속 욕구가 오늘날의 이 현대판 세계화 체제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관찰 대상이요 이유임을 알 필요가 있다. 이를 나는 한마디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드라마라고 상징화한 것이다.

 

기술의 민주화

 

래리 서머스 미국 재무부 장관은 1988년 마이클 듀카키스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즐겨 했는데, 그는 어느 날 유권자들을 위해 듀카키스 후보 대신 연설하기 위해 시카고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카폰이 장착된 승용차가 그에게 제공되었다. 이와 관련해 서머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1988년 당시만 해도 카폰이 장착된 승용차를 타는 것은 꽤나 흐뭇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차 안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1997년, 서머스는 공무상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공식 방문의 한 행사로 그는 코트디아부르의 수도인 아비장 상류 쪽에 위치한 어느 시골마을을 방문해야 했다. 미국 돈으로 추진된 보건 프로젝트 준공식이 그곳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이때 처음으로 간이 우물이 개통되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조잡한 통나무배뿐이었다. 이는 곧 그곳의 저급하기 짝이 없는 경제수준을 말해 준다. 하여간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마을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이 거물급 손님을 접대하느라 그를 명예 추장으로 추대하고 추장이 입는 의복 한 벌을 선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서머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제 강물을 따라 내려갈 통나무배에 그가 막 올라탄 순간, 코트디부아르측의 한 수행원이 “워싱턴에서 온 전화입니다.”라고 하면서 휴대폰을 내민 것이었다. 미국의 대도시 시카고에서 전화 달린 승용차를 타며 흐뭇해했던 것이 9년 전이었는데, 이제는 아프리카의 벽촌마을 아비장에까지 통나무배를 타며 전화로 통화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서머스의 전화 모험은 냉전 시대 동안 전행되어 왔던 변화들 가운데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변화, 즉 통신방식의 변화 덕분이었다. 나는 이 같은 변화를 ‘기술의 민주화’라 지칭하고자 한다. 바로 이 기술의 민주화로 인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은 컴퓨터와 모뎀, 휴대폰, 케이블 시스템, 인터넷 접속을 통해 전에 없이 더 멀리, 더 많은 나라 사람들과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워싱턴에는 벨리 스프링이라는 은행이 있다. 이 은행은 온갖 종류의 전화 및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은행의 광고가,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기술의 민주화를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료한 메시지로 표현하고 있다.

 

은행 하나를 손님 댁에 통째로 넣어드립니다.

 

이 광고 문구처럼 기술의 민주화 덕분에 우리는 이제 집 안에 은행, 사무실, 신문사, 서점, 증권사, 공장, 투자 신탁사, 학교 등을 다 갖추게 되었다.

그럼 기술의 민주화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는 1980년대 일어난 컴퓨터화, 소형화, 디지털화, 통신기술과 압축기술의 발전 등 몇 가지 기술혁신 덕분이다.

예컨대, 마이크로칩 분야에서의 기술진보 덕분에 컴퓨터 연산능력은 지난 30년 동안 대략 18개월마다 곱절로 배가되어 왔다. 그런가 하면 압축기술의 진보로 말미암아 디스크 단위면적당 데이터 저장량은 1991년 이래 매년 60%씩 증가해 왔다. 이와 동시에 데이터 저장비용은 메가바이트당 5달러에서 5센트로 떨어져, 컴퓨터 처리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통시부문의 기술혁신으로 인해 전화 통화와 데이터 전송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꾸준히 하락했다. 이런 한편으로 전화선이나 케이블선, 또는 라디오 전파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전송속도는 역으로 끊임없이 증대되었다.

이제 우리는 비행기 안, 또는 심지어 에베레스트 산 정상 등 어디에서든 쉽게 통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술의 소형화 덕분이다. 컴퓨터, 전화기, 호출기 등의 크기와 무게가 소형화 기술로 인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기기들은 이제 갈수록 더 멀고 외진 곳으로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 뿐 아니라,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일상용품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넥스텔 이동전화 회사가 모토로라의 i1000 휴대폰을 소개하느라 최근에 󰡔USA 투데이󰡕에 실은 전면광고는 바로 이 점을 일깨워

[인쇄하기] 2015-01-05 14: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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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5 아리랑 2015-01-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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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2015-01-05 1211
3722 산성 2015-01-01 3
3721 조이스 박 2015-01-01 938
3720 아리랑 2014-12-31 872
3719 아리랑 2014-12-28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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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7 John 2014-12-23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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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4 홍선희 2014-11-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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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0
  태도
John 2014-10-21 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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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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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5 헌팅톤 2014-10-03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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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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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2 이민화 2014-08-22 911
3691 산성 2014-08-19 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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