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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희
  세월호안의 민중신학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






재난의 때에 말을 가진 자가 침묵하는 것은

내 백성을 다시 십자가 형틀에 매다는 것과 같다.

- 고정희






4·16 세월호 참사는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을 남길 거라는 정혜신의 주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희망의 한 조각처럼 수면 위로 떠 있던 파란 뱃머리를 무력하게 지켜보며 ‘희망고문’을 당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권력, 자본, 언론, 종교의 악을 목격하며 울화병이 다 생겼다. 불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해(苦海)’라는 표현이 지금처럼 생생하고 실제적으로 들리는 때가 또 있을까? 2014년 봄, 한국사회는 세월호와 함께 고통의 바다에 빠졌다.



고통의 바다에서 신학자는 비통한 심정으로 묻는다. “세월호 이후에 신학은 가능한가?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인간의 예의가 아닐까?” 사회적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전통신학은 불가능하다. 그런 신학은 이미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하지만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신학은 오히려 부상한다. 한국 현대사 속의 민중신학이 그런 신학이다. 서남동은 민중신학을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메아리”라고 했다. 고통받는 민중의 부르짖음은 시대를 달리하며 언제나 있어 왔다. 1970년대의 ‘전태일’이, 1980년대의 ‘광주시민’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이 참혹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어 왔고, 민중신학은 그 절규에 침묵하지 않고 메아리로 응답해 왔다.



2014년 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르짖음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크고 비통하게 들려오고 있다. 고통의 부르짖음은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과 ‘카톡’ 메시지로, 세월호 밖에서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 가족의 울부짖음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분노하며 행동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계속 증폭되고 있다. 고통의 소리가 있는 한 메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월호 이후의 시대, 민중신학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하다. “재난의 때에 말을 가진” 민중신학은 침몰하지도 침묵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고통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에 메아리로 공명하며 참여하는 민중신학을 ‘애도,’ ‘기억,’ ‘저항’의 세 주제로 성찰해 본다.




애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세월호 이후 사회적 이슈가 된 것 중 하나가 ‘대통령의 눈물’이다. 참사가 있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울지도 않고 사과도 않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겼을 때인 5월 19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비로소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가 흘린 눈물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 부자연스러움이나 카메라 줌인으로 눈물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일반적 지적도 있었지만, 그의 눈 깜박임까지 세밀하게 분석해 ‘눈물 연출’을 주장하는 동영상도 있었다. 그런 의혹과 불신에 합리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리 생산적인 논쟁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전에는 안 운다고 지탄하더니 이제는 운다고 비난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묻고 분석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눈물이 아니라 그의 삶이었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그가 희생자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불신 때문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어버이날’ 밤을 거리에서 지새우고 난 후에도 여러 날이 지나서야 겨우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유가족들의 심정을 유경근 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저는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어떠한 상황이고 마음인지 내 것으로 알고 공감할 때 진정한 처방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감한다고 말하고 눈물도 흘려줬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눈물이 아니라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나누는 삶이 중요하다. 눈물의 진정성은 삶의 진정성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대통령의 눈물에서 그런 삶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눈물은 그의 변함없는 지지자들에게는 통했다. 지방선거 막바지에 위기를 느낀 새누리당 선거운동원들은 눈물 흘리는 박 대통령의 사진을 안고 “대통령을 구하자,”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며 호소했다. 그 ‘눈물의 정치’와 선동은 6·4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과 정부를 정치적 침몰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선동의 대열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한국교회의 오래된 문제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그 중 하나가 애도기능의 심각한 결손이다. 교회는 사회적 고통을 예방하기는커녕 희쟁자들을 위한 애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참사가 있은 나흘 뒤 부활주일 아침, 많은 교회의 목사들은 4·16 이전에—‘이후’가 아니었기를!—미리 준비한 부활의 메시지를 수정 없이 그대로 선포했고, 평신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물론 목사들과 평신도들 모두 부활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해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 한국교회가 일으킨 종교적 스캔들은 한국교회가 애초부터 애도와 성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은 피하고 부활의 영광만을 선포해 온 교회의 ‘적폐’에서 나온 애도의 무능이었다.



애도의 무능을 적폐라고 표현하는 것은 능력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훈련의 핵심은 ‘반복’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평소 사회적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면, 그들은 부활의 아침에도 지속되고 있었던 고통에 조금은 덜 당황하며 응답하고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관리/재난대응 매뉴얼도 잃어버리고 제대로 훈련도 하지 않았던 정부가 참사 앞에 우왕좌왕했던 것처럼,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안전한 방주로 존재해 왔던 교회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나마 수면 위로 떠 있던 뱃머리마저 물 밑으로 잠겨 버린 부활의 아침, 교회도 침몰해 버렸다.



그것이 교회 침몰 사태의 끝이 아니었다. 교회는 무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했다. 처음에는 참사의 충격에 압도 되어 차마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교회 권력자들이 시간이 흐르자 하나 둘 입을 열어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조광작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미개하다”고 비난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거들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하나님이 침몰하려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며 세월호를 침몰시켰다고 설교했다. 그 외에도 여러 대형교회 목사들이 앞다퉈 막말을 이어갔다. 자칭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그런 발언은 예외적이고 돌발적인 설화(舌禍)일까, 아니면 한국교회 주류의 실제 생각과 믿음을 대변한 것일까?



한국교회의 무지막지함은 근본적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희생자의 고통에 대한 무지가 그것이다. 교회 권력자들은 희생자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지 않는다. 조광작 목사가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백정”이라는 발언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울고자 하는 이가 희생자가 아니라 권력자임을 드러낸다. 김삼환 목사가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이나 오정현 목사가 유가족을 되레 비난한 것도 모두 권력의 눈으로 사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직전인 2014년 6월 1일, 명성교회에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 초대받아 인사말을 한 이는 유가족 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구를 인용하며 교회에 감사했고, 교회 지도자들은 ‘대통령의 위로와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한국교회의 이런 행태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적 발전과 성공주의의 탐욕을 종교적으로 지원하며 정당화해왔다. 김진호는 한국사회에서 발전지상주의가 제도화되는데 있어 교회의 책임이 있으며, “교회는 성공에 미친 사회를 추동하는 역사적 세력”이라고 비판한다. 조광작 목사가 문제의 발언을 한 한기총 ‘긴급’ 임원회의 안건도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 부응하기 위한 전통시장 방문행사를 안산에서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탐욕의 경제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는데, 교회가 경제활성화의 지원자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한의 사제’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탐욕을 축복해주는 ‘탐욕의 사제’였다. 탐욕의 사제들이 탐욕이 죽인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권력과 자본과 동맹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그들의 신정론theodicy과 관련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그리스도인들은 묻는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전능한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그것은 고통과 악의 현실에서 하느님theos의 의dike를 찾는 신정론의 오래 된 질문이다. 그런데 전통적 신정론의 목적은 ‘하느님을 변호하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전능함과 의로움이 부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전통적 신정론은 결국 고통과 악을 신적 의지와 계획의 일부로 설명한다. 문창극 총리 내정자가 일제강점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것이나, 김삼환 목사가 세월호 참사를 하느님이 주신 기회라고 한 것도 그런 전통적 신정론의 영향 때문이다. 전통적 신정론의 ‘악’은 희생자의 고통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함으로써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세월호의 선장도 한국호의 선장도 일본 천황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필요한 역할을 한 것이 된다. 결국 희생자가 아니라 하느님을 변호하느라 가해자인 악인을 변호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를 변호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통령의 의’를 변호하는 것도 그런 신정론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민중신학적 신정론은 하느님이 아니라 민중을 변호하고 편든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고통에 침묵하는 하느님을 향한 항의도 피하지 않는다. 민중신학은 하느님의 전능보다 하느님의 전적인 선을 중시한다. 홀로코스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한국전쟁, 킬링필드, 5·18 광주학살, 르완다 인종학살, 9·11 테러, 4·16 참사로 이어지는 극단적 폭력의 시대에 ‘전능한 하느님’은 ‘악한 하느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통과 악의 세상에서 하느님의 선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이해는 ‘약한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은 위르겐 몰트만이 강조한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이고, 민중신학이 발견한 ‘민중과 함께 고통받는 하느님’이다. 초기 민중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는 그런 약한 하느님을 약한 메시아 이해를 통해 보여준다. 예수는 민중과 함께, 민중의 하나로 고통을 겪는다. 예수가 민중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예수를 구원한다. 민중이 스스로를, 그리고 하느님을 구원한다. 이런 민중신학적 신정론은 인정론anthropodicy이다.



악이 선을 드러낸다. 한국교회의 애도불능은 참된 애도가 무엇인지를 식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참된 애도는 신학적 언어 이전의 인간적 울음이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우는 것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생들이 지난 5월 8일 기습시위를 할 때 읽은 성명서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는 성구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우는 자들을 ‘위해’ 울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울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함께’는 장소성이 아닌 관계성이다. 고통의 장소에서 희생자와 맺는 관계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방관자가 될 수도 있고 구원자가 될 수도 있다. 누가복음서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는 가해자였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방관자였고, 사마리아인은 구원자였다. 이 비유에서 예수가 묻는 것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가 아니라 “누가 고통받는 이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이다. 세월호는 묻는다. 오늘 누가 희생자들의 이웃이 되어 함께 울고 있는가?



진정한 애도는 또한 고통받는 이의 마음으로 우는 것이다. 바울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권면에 이어서 그 ‘함께’를 ‘옆’이 아닌 ‘안’으로까지 가지고 들어가라고 한다. “서로 한마음이 되십시오(로마서 12:16).” 우는 자와 같은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우는 자의 마음으로 울라는 것이다. 우는 자의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를 따라 울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눈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눈물’이다. 유가족의 눈물,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 청소년들의 눈물, 멀리 있어 더 안타까워서 「뉴욕타임즈」 광고 운동을 하며 우는 해외동포의 눈물, 그렇게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며 우는 이들의 눈물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의 눈물과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느끼며 함께 우는 이들의 눈물이 같을 리 없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의 화학적 염도는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보이는 삶의 인간적 염도에는 비교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교회의 애도불능과 비교해보면 직접적 피해자인 유가족과 간접적 피해자인 시민사회가 보인 애도는 교회의 애도보다 더 종교적이었다. 그나마 있었던 종교적 애도의 메시지도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원초적 애도의 메시지에 비교하면 ‘각주’에 불과했다. 그들은 타자를 ‘위해’ 애도하는 것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신체적 공감’의 애도를 나타낸다. 세월호 이후 시민들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웃다가도 울고, 기뻐하다가도 슬퍼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한없이 미안해했다. 그들은 유가족과 “한마음이” 되었다. 팽목항 자원봉사자들의 수칙에는 “우리는 가족”이라고 적혀 있었다. 불이(不二)의 애도였다. 한마음으로 함께 우는 시민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여 물었다. “이것이 국가인가?” 그들은 같은 이유로 실망하며 한국교회에 묻는다. “이것이 교회인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에만 ‘세월호 이후’의 신학이 가능할 것이다.




기억: 세월호 ‘안의’ 가난과 죽음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 시점에서 재경험한다. 또한 기억의 다리는 그 위로 걷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도 형성해 준다.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나’가 되고 기억의 공유를 통해 ‘우리’가 된다. 인간은 기억함remember으로서 자신과, 공동체와 다시re 하나가member 된다. 그 하나 됨은 삶과 죽음의 경계도 넘는다. 요하네스 메츠는 고통의 기억을 통해 산 자는 죽거나 잊혀져서 말을 할 수 없는 이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억은, 인간을 경계를 넘어 서로 기대고(人) 관계하는(間) 존재가 되게 한다.



그런데 기억은 복수적이고 복합적이다. 사건은 하나지만 기억은 여럿이다. 주체의 관점에 따라 사건이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각 주체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 혹은 자신이 잊지 않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창조하거나 왜곡하거나 조작하기도 한다. 특히 국가폭력의 경우 기억의 복수성과 복합성이 더욱 분명하다. 가해자인 국가권력은 사건의 ‘공식적 기억’을 만들고, 그것과 다른 피해자의 기억을 억압한다. 피해자는 ‘대항기억’으로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에 맞선다. 따라서 사건의 진실을 다투는 ‘기억투쟁’이 벌어진다.



이념적 갈등이 격렬했던 한국 현대사에는 이런 기억투쟁의 사례가 많다. 예를 들면, 제주 4·3을 가해자인 국가권력은 ‘반란’으로 기억하지만 피해자인 제주 민중은 ‘학살’로 기억한다. 광주 5·18도 국가권력은 ‘폭동’으로 기억하지만 광주 시민은 ‘민주화운동’ 혹은 ‘민중항쟁’으로 기억한다. 피해자들의 기억투쟁은 고통스럽고 지난하게 전개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4·3은 66년 만에, 5·18은 17년 만에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을 피해자의 기억으로 수정하거나 대체했다. 그런데 이런 공식적 기억의 수정과 대체 가능성은 피해자들에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게 한다. 기억투쟁을 통해 그들의 대항기억으로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 공식적 기억 역시 정치적 역관계의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다시 다른 기억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쟁’도 정치권력의 변화가 국가의 공식적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 사례이다.



4·16 세월호 참사도 기억투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가해자인 권력과 자본의 의도에 따라 사건의 표층 원인ㅡ유병언과 구원파의 종교적 광신, 선장과 선박직의 도덕적 해이, 소위 ‘관피아’의 적폐ㅡ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고 있고, 사건의 심층 원인ㅡ권력과 자본의 구조적 책임ㅡ은 은폐되고 왜곡되고 조작되고 있다. 그럴수록 피해자들은 기억의 왜곡과 유실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대상은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가 곧 기억 과정의 일부이다. 4·16에는 과거의 4·3이나 5·18에는 없던 현상이 하나 있다. 정보 획득의 ‘실시간성’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었다. 이 실시간성이 중요한 이유는 권력과 자본의 정보 독점이나 일방적 편집이 용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매체들은 특정 관점으로 선택하고 해석한 정보를 전파하지만, 시민들은 그것을 재료로 하여 전혀 다른 관점의 분석과 주장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제도언론이 전유한 정보를 대안적 해석을 위한 정보로 재전유할 수 있는 자율성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 제도언론을 불신하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스스로 사태를 기록한다. 심지어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던 아이들까지도 자신들의 최후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문자로 남겼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기록자요 기자가 되었고, SNS는 ‘사용자 제작 뉴스’(User-Created News)를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이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관찰, 기록, 분석이 바로 공식적 기억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도 주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기억된다. 세월호 참사의 실시간적 정보에서 여러 기억들이 실시간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기억이 단지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개별적 주체는 특정한 관점을 선택하지만, 그 관점을 공유하는 이들이 집단적, 사회적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특정한 관점으로 선택하고 공유한 기억을 통해 사람들은 결속하거나 배제한다. 이처럼 선택이 불가피하고 기억이 복수적이라면,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민중신학은 희생자 중심의 관점을 선택한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4·16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한 추모미사에서 유가족 대변인 유경근 씨는 호소한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저희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민중신학은 기억의 신학운동이다.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은 예수와 역사 속의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그들과 다시 하나 되어왔다. 세월호 사회의 민중신학이 모든 힘을 기울여서 해야 할 것은 희생자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안병무는 “민중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이 민중신학”이라고 했다. 오늘의 민중신학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말해야 한다. 오늘 희생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라며 말하고 있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이 진상규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기억투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침몰과 구조 실패의 원인은 ‘세월호 이후’만을 추적해서는 규명할 수 없다. 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는지 규명하려면, 세월호가 지나온 죽음의 항로를 모두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고통의 시작이 아닌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세월호 참사는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제국주의 강점, 분단, 전쟁, 독재, 산업화, 신자유주의로 연속된 사회적 악의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세월호 이전에도 우리 사회의 ‘세월호들’이 하나 둘 침몰해 왔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세월호 ‘안의’ 삶이었다.



우리가 세월호 안에서 경험해온 것은 ‘가난’과 ‘죽음’이다. 어느 유가족이 안산 합동분향소에 한탄의 글을 남겼다. “그 동안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이제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가난한 그는 세월호 ‘이전’에도 ‘이후’에도 가난하다. 차이는 그나마 있던 작은 행복조차 아이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것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세월호 안에서 살아왔다. 가난한 이들은 오늘도 과적상태의 신자유주의 세월호 안에서 돈과 물질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절대적 빈곤’은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은 없고,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극빈국가들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신명호는 최근의 한 집담회에서 가난한 사람을 절대적 빈곤선poverty line 아래의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적 삶의 수준의 절반 수준 아래의 삶을 사는 이들로 정의한다. 그는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의 15퍼센트 정도는 여전히ㅡ그리고 앞으로도ㅡ가난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가난은 상대적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체적 부의 양이 팽창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의 무게만큼 그들이 느끼는 비참의 무게도 커진다. 그 비참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가난한 자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난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세월호에서 250명의 청소년들이 죽임 당했지만, 2012년 한 해 동안 336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청년, 여성, 노인의 자살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살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가난’이다. 가난한 이들은 ‘살기 싫어’ 죽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없어’ 죽는다. 삶이 지겨워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옥 같아서 죽는다. 지금 여기에서 지옥을 사는 이들이 지옥을 떠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가난과 죽음의 세월호 사회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가난한 자는 자신의 명보다 일찍 죽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비통하게 확인해 준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구조적 죽임’을 당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삶의 구조적 불안정성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2013년에 한국의 산업재해자 수는 91,824명에 이르고, 그 중 사고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1,090명, 질병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839명이었다. 매년 2천여 명이, 약 네 시간마다 한 명씩,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부끄럽고 비참한 ‘OECD 1위’ 항목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전에 이미 죽음의 세월호였다.



죽는 자만이 아니라 산 자도 괴롭다. ‘자살율 최고’가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자기파괴적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라면 ‘출산율 최저’는 자포자기적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구조적 불안이 개인적 불안과 불행을 낳고, 그 불행이 죽음 혹은 비-생명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도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세월호 이전에는 ‘정규직’이라도 희망했지만, 세월호 이후에는 ‘살아 남는 것’을 희망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불안감, 불행감, 피로도, 자살율의 수치로 보면 한국의 ‘국민총고통(Gross National Suffering)’은 세계 최악 수준일 것이다.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으면서 이전의 세월호들인 가난과 죽음이 떠올랐다. 그 세월호들 안의 오래 된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4·16의 기억은 온전할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죽음의 바다로 끌고 와 빠뜨린 세월호들의 항로를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세월호 진상규명도 근본적 원인규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세월호들은 죽음의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면에서 ‘죽임’이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민중신학자들에게 비통함과 함께 희망을 준다. ‘죽임’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남동은 말한다. “죽음(死)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형제를, 이웃이 이웃을, 동포가 동포를 죽이는 ‘살(殺)’의 문제는 우리가 마음 고쳐먹고 회개하고 제도를 달리하면 어느 정도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회개, 곧 전환이 죽임의 항해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저항: 전환과 전복




가난과 죽임의 체제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세 가지다ㅡ협력하는 것, 달아나는 것, 달려드는 것. 협력하거나 달아나면 나 하나는 살 수 있겠지만 제2, 제3의 세월호가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살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세월호 사회의 항로를 바꾸기 위해 달려들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해 달려들어야 할까? 탐욕과 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의 방식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부각시킨 ‘의자놀이’의 은유는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하며 몰아붙이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이야 어찌 되든 나만 앉으면 된다. 모두가 적이다. 안전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으려고 다투는 아수라장에서 밟히고 밀려나고 탈락하는 타인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을 보며 “나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무사하다”고 안심한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살아남는 강자독생(强者獨生)의 길이다.



그러나 탐욕의 체제에 순응하며 악착같이 경쟁해 이기더라도 최종적 승리는 없다. ‘노동 없는 자본주의,’ ‘고용 없는 성장’이 점점 더 지배적 현실이 되어가는 시대에 의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구직자, 실직자만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김진숙은 “오늘의 정규직은 내일의 비정규직”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고 실직자가 될 수 있기에 늘 불안하다. 비극은 그 불안이 사람들을 더 모질게 하여 신자유주의적 의자놀이에 더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관하고, 앉은 자들이 앉지 못한 자들의 고통을 모른 척한다. 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지만,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얻는 개인의 안전이 행복을 줄 수 없다. 의자에 앉지 못한 자도 앉은 자도 모두 불안하고 불행하다.



고통이 사람들을 깨우친다. 의자놀이 사회, 세월호 사회에서 불안하고 불행하게 살아온 시민들은 4·16 이후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이전에는 가만히 있던 이들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한다. 그들의 참여와 행동은 전통적(?)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주도 없이 자발적,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 개인이 집단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학생 용혜인은 지난 4월 말에 “가만히 있으라ㅡ침묵행진”을 제안하여 매 번 수백 명이 참여하는 직접행동을 여러 차례 주도해오고 있고, 벌써 두 차례나 연행되었다. 그 외에도 엄마들, 고등학생들, 동네 주민들처럼, 기존의 조직운동에 참여하지 않던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런 시민 행동이 세월호 ‘이후’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확산되며 사회운동 양식의 변화를 가져온 ‘촛불시위’는 시민의 자율적, 자발적 행동을 상징한다. 또한 지금의 시민 행동이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이나 2008년의 촛불시위보다 더 큰 규모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의 시민 행동에는 삶의 근원적 변화를 바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근원적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세월호를 단번에 전복시켰지만, 우리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적당히 항의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한, 신자유주의를 단번에 전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전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복이 불가능한 시대에도 ‘전환’은 가능하다. 전환이란 무엇으로부터 무엇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메타노이아(회개)가 그것이고, 안병무가 제시한 탈(脫)/향(向)이 그것이다. 그것은 탐욕에서 생명의 가치로, 이기적 삶의 방식에서 이타적,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들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 또는 “돈보다 생명”이라는 손팻말은 세월호 침몰의 근본원인이 탐욕과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이며, 그 체제로부터 전환해야만 살 수 있다는 각성과 각오를 표현한다.



탐욕의 체제로부터 전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한 저항이다. 우리가 사회이다. 세월호 사회의 항로를 바꾸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내탓이오〉운동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죽임의 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나부터 회개”하자며〈회초리 기도회〉를 갖자는 것도 아니다.〈내탓이오〉운동의 한계는 참사의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지 못하거나 은폐하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우리 시대의 악은 이름과 주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처럼, 세월호를 침몰시킨 악의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악의 이름은 탐욕이고 그 주소는 신자유주의다.〈내탓이오〉운동이 저항적 의미를 얻으려면, 우리의 집단적 이름이 탐욕이고 우리의 주소지가 신자유주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안의 신자유주의, 내 안의 세월호를 알아차리고 참회 혹은 전환할 때에만 죽임의 항해를 끝낼 수 있다.



전환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적 의자에 앉을 때 얻게 될 안전감을 포기하고 의자에 앉지 않고 사는 삶, 세월호 밖에서 사는 삶이 위험하고 두렵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라면 덜 두려워할 수 있다. 오늘의 민중신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개인들에게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으로부터 전환하는 것이 사는 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그 개인들이 연대하여 전환의 삶을 함께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민중신학은 ‘민중교회’의 역사적 경험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안병무는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에서 “교회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0세기의 민중교회는 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의 원형으로 시작된 운동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중교회 운동이 약화되어왔다고 하지만, 사실 진화해 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과거의 ‘계급교회’로서의 민중교회는 쇠퇴했지만, 다중적 고통의 부르짖음이 더 크게 들리는 21세기의 민중교회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회’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권진관은 민중교회 활동이 복지, 마을공동체운동, 청소년운동, 생태환경운동, 외국인노동자 운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전문화 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런 교회들의 “연대체”로 21세기의 민중교회를 정의한다.



이런 민중교회 운동은 전환을 통한 전복을 꿈꿀 수 있게 한다. 국가를 한 번에 바꾸는 정치적 변혁은 어려워도 생활공동체를 바꾸는 문화적 변혁은 불가능하지 않다. 오늘의 민중교회 혹은 대안교회는 탈-신자유주의적 삶을 꿈꾸는 공동체, 마을, 지역과 동맹하여 공생(共生)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탈/향의 전환이 우리 시대의 전복이다. 지난 해 [생명평화마당]이 주최한 〈작은 교회 박람회ㅡ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도 그런 탈/향적 전환과 전복의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이정배는 ‘작은교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작다는 말은 종래와 같은 기형적(자본화된)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자 좀 더 다양해지는 것(카리스마 공동체)이며 역사적 뿌리에 충실한 것(언더그라운드 교회)이고 종국에는 치열하게 대안적 신앙양식을 창출하는 것을 함의한다.” 세월호 이후/안의 한국사회에서 민중교회 혹은 작은교회는 체제에 투항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달려든 이들, 탐욕과 경쟁의 체제로부터 전환한 이들이 연대하여 대안을 만들어가는 탈/향 공동체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런 탈/향 공동체가 추구하는 전환은 안병무가 성찰한 공(公)의 실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것, 즉 “아무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것”을 홀로 차지하려는 탐욕의 세력과의 투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도생, 강자독생의 길에서 공생의 대안적 삶으로 돌아서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이다. “공을 공으로 돌리는 것”은 함께 사는 길인 것이다. 함께 사는 삶으로의 전환은 ‘최대’가 아니라 ‘최소’의 길이다. 시인 송경동은 호소한다. “우리의 요구와 꿈이 큰 것도 아니다. 당장 사유재산을 폐지하자는 말도, 모든 기업과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요구도 아니다. 자본 권력을 민중 권력으로 라는 요구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더 슬프지만 다만 안정된 일자리 하나 얻게 해달라는 소박한 꿈들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슬픈 호소들이다.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나누자는 것이다. 너희들하고 같이 못 살겠다가 아니고, ‘함께 살자’라는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슬픈 호소들”에 응답하며 그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공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기적 안전과 안락의 의자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과 경쟁의 항로에서 뛰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깨우쳐준다. 뛰어내려야 산다! 그 자발적 위험의 감수와 전환이 세월호 안의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뛰어내려라.

그러면 너를 받아 줄 그물이 나타날 것이다.

- 禪家의 격언

[인쇄하기] 2014-06-28 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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