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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 작가 별세
  


	/사진=조선일보DB
/사진=조선일보DB

소설가 최인호씨가 25일 오후 7시 1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2008년 5월 침샘암 발병 이후 투병(鬪病)생활을 한 지 5년만이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방둥이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최인호씨의 문학은 산업화에서 웰빙사회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변천사를 반영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를 그린 단편 '타인의 방', 대중사회의 상징이 된 장편 '별들의 고향', 역사추리소설 '잃어버린 왕국', 불교소설 '길 없는 길'과 유교소설 '유림'에 이르기까지 최인호 소설은 문학사적으로 수많은 문학평론가들의 다면(多面)평가 대상 1위로 꼽혀왔다.
 
최인호씨 유가족들은 “추석 이틀 전까지 괜찮아서 입원후 퇴근했다가 다시 추석날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세상을 떠났다”며 “편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한 유가족은 “임종을 지켜본 최인호씨의 딸 다혜씨가 ‘아빠가 ‘주님이 오셨다. 됐다’고 했다”고 전했다. 
 
최인호씨는 침샘암 투병을 시작한 2008년부터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왔고 2009년부터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그는 "환갑은 무슨 환갑, 이제 이팔청춘"이라며 개구쟁이 표정으로 60회 생일을 맞기도 했다.
 
최인호씨는 1967년 22살의 나이로 연세대(영문과) 재학 중 쓴 단편소설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登壇)했다.
 
당시 군대 훈련소 훈련병이었던 최인호씨는 동료들과 함께 연병장에서 기합을 받다가 당선 통보를 받았다. 부대장이 갑자기 “오늘 기합은 중지! 그 이유는 훈련병 중에 한 사람이 고등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이라고 외쳤다. 훈련병 최인호는 장교 숙소에서 '당선축하. 조선일보'라는 전보(電報)를 받았다.
 
이후 최인호씨는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 등을 발표하며 ‘소설 100만부 시대’를 연 인기 작가가 됐고, 왕성한 생산력으로 100여권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단순히 소설 뿐만 아니라 신중현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 등과 활약하며 영화·대중음악·방송 등 1970년대 청년 문화의 대변자로 활약했다.
 
1982년 단편 ‘깊고 푸른밤’으로 제 6회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제 1회 가톨릭문학상(1998), 2년전에는 투병중에 완성한 장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1975년부터는 2010년까지 장장 35년 6개월 동안 ‘월간 샘터’지(誌)에 자전(自傳) 소설 '가족'을 연재하는 작가적 끈기와 헌신성을 보였다. 402회나 연재된 소설 '가족'은 작가가 자신의 아내(황정숙)와 딸(다혜)·아들(도단)을 실명(實名)으로 등장시켜 생활 속에서 느끼고 깨달은 짧은 이야기를 소설과 에세이의 융합 형식으로 쓴 것이다.
 
최인호씨는 2년 전에는 항암 치료를 받는 힘든 투병생활 중에 완성한 장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인호씨는 서울고 1학년 재학 중이던 1961년 청소년 잡지 ‘학원’에 시(詩) '휴식'을 투고해 우수상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괴테의 시 문구/ '산봉우리마다 휴식이 있으리라'처럼/ 나는 휴식을 취하였노라/…/ 결코 나는 조용한 휴식에 묻힐지언정/ 결코 나는 잠을 자지 않노라….”
 
그가 쓴 시 처럼 한국 현대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위대한 작가가 영면(永眠)했다.
 
발인은 9월 28일 서울 명동성당이며, 그의 유가족은 부인 황정숙씨와 다혜(딸), 도단(아들)이다.
 

[인쇄하기] 2013-09-26 03: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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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요즘이 나의 황금기…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겠다”

작업실에 나가고, 산에 오르고, 운전하고, 여행을 간다. 작가 최인호 씨는 암에 걸리기 전과 똑같이 생활한다. 삶을 소진하는 고통의 축제 속에서 소설을 완성한 그는 “글이 뭔지 알게 돼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사진 더보기“정말 쓰고 싶은 글을 한 편이라도 쓰고 죽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백척간두의 고통 속에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작품을 쓸 수 있었고,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유쾌한 웃음이 줄곧 폭죽처럼 터졌다. 뭔가 생생히 묘사하고 싶을 때는 손짓과 몸짓이 커졌다. 목소리는 약간 쉰 듯 들렸으나 인터뷰 하는 3시간 내내 그는 기운차게 대화를 이끌었다. 수술과 치료의 흉터가 남은 목을 가리기 위해 두른 목도리, 헐렁한 옷 아래 수척해진 몸을 빼면 그가 3년째 투병 중이란 사실을 깜박 잊을 뻔했다.

12일 낮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 최인호 씨(66)의 표정은 밝고 홀가분해 보였다. 암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썼던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가 출간 한 달여 만에 15만 부를 돌파했고 16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사인회를 시작으로 전국 독자들과 만날 채비도 마쳤다. 그는 “책 낸 뒤 장시간 대화와 사진기자의 촬영에 응한 것은 처음”이라며 “인터뷰 종결자 격인 인터뷰”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에 앞서 방안을 둘러보니 그가 삐뚤빼뚤 연습한 한문 붓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세여청산하자시 춘광무처불개화·세상과 청산은 어느 쪽이 옳은가. 봄볕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도다)’. 일찍이 그가 쓴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 경허 스님이 남긴 선시다.

“이 말이 좋다. 나의 좌우명이다. 속세다 청산이다, 친구냐 적이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네가 옳나 내가 옳나 우리는 시비를 따지고 들지만 봄볕만 있다면 어디든 어김없이 꽃이 피는 것, 내 마음 속에서 분별심을 버리고 봄볕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근데 병을 걸린 뒤 암이 내게는 봄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암과의 만남이 어떻게 봄볕이란 걸까. 그가 설명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병원은 재수 없고 불운한 사람들이나 가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격리된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어영부영하다가 들쑥날쑥하다가 허겁지겁 죽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 “이 자식들아 난 살아있다” 매일 외쳐 ▼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나는 환자로 죽지 않고 작가로 죽겠다”고 평소 말해 왔는데….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병은 자랑거리도 아니고, 숨겨야 할 수치도 아니다. 다만 병들어 구질구질하게 힘든 모습을 남에게 보여줘 쓸데없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은둔했다. 그러나 이번에 신작을 펴내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내가 암을 팔아 앵벌이하려는 생각 때문도 아니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에게 그나마 희망과 기쁨을 주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영상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예수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의 집을 찾아가 말한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환자 여러분에게 이 장면과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모든 환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동굴에 갇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체처럼 냄새를 풍기면서 누워 있다. 우리들은 동굴에서 나가야 한다. 나는 환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오세요. 병상에서 일어서세요.’ 그래야만 우리는 환자로 죽지 않고 작가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 영화 ‘빠삐용’을 보면 마지막에 스티브 매퀸이 야자열매를 채운 자루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려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야,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 있다.’ 환자들은 끊임없이 외쳐야 한다. ‘야,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 있다.’ 병의 동굴에 갇혀 있지 말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어라. 헤엄치려 하지 말고 파도에 몸을 맡겨라. 두려워하지 마라. 파도가 그대를 대륙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탁자 위 양철통에서 고무 골무를 꺼내 보여준다.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수하는 작가는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2월 26일까지 날마다 이 탁자에 앉아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발톱과 손톱이 빠지자 약방에서 골무를 사다 손가락에 끼우고 고통의 축제 속에 글을 완성했다. 그에겐 “작가 인생 50년에 쓴 수백 편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고독한 독자인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했는데 벌써 15만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남자의 사흘간 기록이란 내용이 자칫 난해할 수 있는데, 이런 뜨거운 반응을 기대했는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고통 끝에 탄생된 작품에 독자들이 큰 힘을 보태줘서 나로서는 큰 위안이자 기쁨이다. 돌이켜보면 50년 가까운 작가 인생에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독자였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 안타이오스처럼 땅에 쓰러지면 나는 독자의 땅에 의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이번에 쓴 작품도 엄청난 에너지로 항상 나를 사랑해주는 독자들의 응원 덕분이다.”

―신작에서 청년작가의 신선함이 느껴진다는 평이 나온다.

“두 달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끝없는 구역질과 가려움증에 시달리면서도 불가사의한 집중력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이 작품이 고통 중에 쓴 작품이기 때문에 잘 봐달라는 어리광적 하소연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명품을 짝퉁화하는 교묘한 수법으로 짜깁기하듯 매너리즘에 빠져 봄날에 군내 나는 김치와 같은 작품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고통의 공간과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번 소설과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이 작품을 통해 청춘의 용기와 패기가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나는 젊어지는 물을 먹어 회춘한 기분이다. 그래서 기쁘다.”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서겠다고 했는데….

“내 문학인생의 제1기는 데뷔해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이었고, 제2기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암에 걸리기까지의 기간이었다. 이번에 나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3기의 문학을 시작하려 한다. 제3기의 문학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겠다. 나중에는 절대독자인 나까지도 사라져버리는 그런 무위(無爲)의 작품을 쓰고 싶다. 모네의 예를 들자. 모네는 알다시피 인상파 그림의 아버지다. 젊은 시절 그는 하루 종일 호숫가에 앉아 수련 위에 비치는 햇빛의 반사를 시시각각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모네가 병원에 달려갔을 때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모네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숨져가는 아내의 얼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었다. 모네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나는 본받고 싶다.”

어느덧 점심시간. “먹는 게 대단한 전쟁이야….” 점심 식사로 준비한 콩국수를 먹기 전에 그가 말했다. 남들이 수저를 놓은 뒤에도 서두르지 않고 국수를 건져먹고 나선 국물을 나눠 마시며 한마디 던진다. 아내, 딸, 그리고 손녀를 위한 한 모금씩이라고.

3년 전 침샘암 진단을 받은 이후 지도 없는 길에 내팽개쳐진 상태지만 그는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인생 공부 많이 했다. 야코 많이 죽었지…. 그래도 내가 낙천주의자라서.” 아프고 나서 자신의 장점도 깨달았다. “내가 단점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 와이프도 칭찬 잘 안하는 편인데 장점이 많다고 인정했어. 하여튼 내가 잘 견디는 편이야. 희귀한 환자라고 하더라. 그래도 고비를 넘겼다고 할 수 있나, 늘 현재진행형이지. 작년 겨울에 가장 힘들 때 일주일간 주사 맞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그때 아파트 앞 복도를 걸으니 55걸음이야. 그걸 50여 번 왕복하면 6000걸음쯤 되더라고.”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는지.

“나는 작가다. 일곱 살 때부터 나는 오직 작가만을 꿈꿔왔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내 생의 목표다. 정말 쓰고 싶은 글을 한 편이라도 쓰고 죽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백척간두의 고통 속에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작품을 쓸 수 있었고, 그것이 또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니 바로 이 순간이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최근에 나는 이태석 신부님이 임종하기 직전에 들렀던 매괴성당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외국인 신부님 동상이 있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받아 온 존재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인생은 축제고, 카니발이었으며, 매 순간이 전성기가 아닐 때가 없었다. 요즘이야말로 나의 황금기다. “

인터뷰 말미에 그는 우리네 삶을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모습에 비유했다. 언제쯤 표를 구할지 모르겠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어느덧 내 뒤로 줄선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다. 언젠가 우리는 표를 구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곧 독자들을 만나러 서점에 간다. 의사는 내게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그토록 사랑해준 독자를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수는 청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많으니까. 그리고 잠깐 열었던 사립문을 닫을 것이다.”

그가 “남은 것, 내가 바라는 소원 한 가지”라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년 4월 1일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 것이다. 기자들을 앞에 두고 나는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을 속여서 미안하다고. 내가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한 것은 외로워서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고. 그리고 껄껄 웃으며 큰소리로 소리칠 것이다. “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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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필자가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집을 많이 읽은 편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쁨의 주인공은 나와 같아서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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