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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책들의 향연과 토론의 기술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는 자신을 책이며 서재에다 비유했다. 너무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책이며 곰팡내 나는 책들로 가득한 서재에다 스스로를 비유한 것이다. 세상 곧 삶이란 결국 한권의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일이라고도 했다. 상징주의 시인다운 발상이며 비유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모든 것은 텍스트 안에서의 일이며,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여기서 텍스트를 사실상 책에 대한 비유이며 삶에 대한 비유로 봐도 무방하겠다. 결국 삶이란 아름다운 책 한권을 만들고 집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어떻게 만들고 집필할 것인가. 책에 비유되는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이며, 또한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책의 미덕은 머물고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것에 있다. 점차 머물기가 어려운 시대에 머물기를 권유하는 책의 미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책의 운명 곧 삶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상호는 책을 그린다. 처음부터 책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변방을 기웃거리면서 삶의 흔적들을 채집하거나 역사적 현장을 찾아 시간과 기억의 부침을 기록하는, 다소간 아카이브적인 그림을 그렸었다. 아카이브적인? 이야말로 책이 아닌가. 책 자체가 이미 아카이브가 아닌가. 그러므로 도시의 변방에서 역사적 현장으로 종횡하던 작가가 책에 정박한 것은 자연스럽다. 정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책에 천착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작가가 책을 그리는 방법은 좀 특이하다. 안료를 층층이 쌓아 두툼한 두께의 안료 층을 만드는데, 일정 부분에서는 주사기로 안료를 주입하듯 덧바르는(덧 올리는?)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그림에서는 일정한 회화적 효과와 함께 물성이 강하게 어필되고, 실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물감을 가능케 하며, 이로써 시각적인 감각경험을 촉각적인 감각경험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보면서 만지는(혹은 만져지는) 일종의 촉각시를 실현하고 있다고나 할까. 여기서 층층이 쌓인 안료 층은 말할 것도 없이 물성과 실물감 같은 회화적 효과를 위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의 지층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과거 위에 포개진 도시의 현재도 역사를 매개로 한 시간과 기억의 부침도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이 삶의 메타포인 만큼이나 시간의 메타포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를테면 곰팡내 나는 아님 색 바랜 책갈피를 넘기다가 불현듯 만나지는 시간의 현시에 대한 기억이며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더러 작가는 이렇게 덧바른 두툼한 화면을 사포로 갈아내고, 때로 물 사포질을 해서까지 안료 층을 갈아낸다. 경우에 따라선 캔버스 바탕의 올이 드러나 보이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처럼 애써 덧바른 안료 층을 왜 굳이 갈아내는 것일까. 이 또한 기본적으론 회화적 효과를 위한 것이지만(이를테면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화면에 덧바른 안료 층이 낱낱이 드러나 보이면서 만들어지는 색의 지층을 부각하는 식의), 그 자체 희미한 기억의 메아리를 붙잡으려는 부질없는 몸짓 내지는 현재를 밀어올린 과거 아님 원형을 캐내려는 의지가 표출된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일종의 발굴의 개념이 작가의 그림 밑바닥에 면면히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한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곧 책 속에서 어떤 의미를 캐내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독자는 잠정적인 박물학자들이며 고고학자들이다. 그런가하면 시간의 지층을 쌓고(안료 층을 덧바르고) 또한 이와는 거꾸로 시간의 지층을 헤집는(안료 층을 갈아내는) 작가의 행위는 시간과 기억이 부침하는, 그리고 기억과 망각이 길항하는 존재의 생리를 비유한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일련의 과정은 전통적인 옻칠 기법에 착안한 것이다. 이를테면 안료 층을 두툼하게 발라 올리거나, 그렇게 덧바른 안료 층을 물 사포질을 이용해 갈아내거나, 그 과정을 통해서 밑칠이 드러나 보이게 하는 것이 그렇다. 자기 나름의 회화적 방법을 모색하던 중 전통에서 그 해법을 찾은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한편으로 이런 전통의 각색 내지 재해석은 특정 소재로도 확인이 되는데, 전통 민화의 한 장르인 책거리 내지 책가도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들이 그렇다. 전통 민화에서처럼 책장에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형식을 취하는데, 그 형식만을 놓고 보자면 사실상 책을 소재로 한 작가의 모든 그림이며 작업들이 이런 책거리 내지 책가도를 변주하고 심화한 경우로 봐도 무방하겠다. 전작에서처럼 도시의 변방을 기웃거리거나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도,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근작에서 보듯 책을 소재로 취한 연후에도 현재(혹은 현실)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현재(혹은 현실)를 밀어 올린 과거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 회화의 형식논리를 찾는 작가의 남다른 삶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지 싶다. 그 자체를 자기 회귀적 내지 자기반성적 경향성으로 봐도 되겠다. 


여기에 작가는 실제와 이미지, 실상과 허상의 문제를 다룬다. 무슨 말이냐면, 책을 그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그린 책과 만든 책을 한자리에 대비시키는데, 회화적 화면과 함께 그 화면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얇은 두께의 책장을 만들고, 그 두께에 맞춰 재단한 책들을 책장에다 꽂아 대비시킨다. 그림으로 재현된 책 이미지와 실제의 책 오브제(아님 레디메이드)를 대비시킨 것인데, 이때 그 책이나 책장의 두께가 얇은 것은 아무래도 평면성과 정면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즉 정면에서 볼 때 책이며 책장의 됨됨이(하이데거 식으론 존재의 존재다움)가 더 잘 드러나 보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평면성이 회화적 평면을 덩달아 강조하는 시각 내지 인지효과를 유도한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회화적 평면과 책 오브제가 일루전을 놓고 다투는 경우를 의식한 것으로 볼 수가 있겠고, 이로써 실제와 이미지, 실상과 허상의 경계와 관련한 전형적인 회화적 문제의식을 의도한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내친 김에 말하자면, 정면성이 초상화의 전형적인 문법임을 인정한다면 평면성을 강조하고 정면성을 부각한 작가의 책 그림은 일종의 사물초상화를 예시해주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소재로 차용된 책의 내용을 보자면, 6자회담 당사국인 6개국의 성경을 통해 겉으로는 의기투합(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서 저마다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정치적 현실을 풍자하기도 하고(6자회담), 남북한의 정체를 다룬 일련의 책들과 함께 각각 무궁화와 목란으로 상징되는 남북한의 국화를 대비시켜 남북한 분단현실을 풍자하기도 하고(아! 나의 조국), 총칼을 앞세워서라도 돈을 쫒는 자본주의의 비정한 현실을 풍자하기도 한다(자본주의). 성경으로 대변되는 기독교문화와 코란으로 대변되는 이슬람 문화를 대비시키기도 하고(성경과 코란), 동양의 돈황 불화와 서양의 성화(루오의 그림을 패러디한)를 대비시키기도 한다(동양과 서양). 풍자와 대비를 강조한 이 일련의 그림들은 남북분단현실과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인식과 함께 일종의 문화번역 내지 문화충돌현상을 주제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가 평소 즐겨 읽었던 서적들과 함께 좋아하는 꽃 설중매를 대비시키거나(향수), 평소 작가가 영향 받았던 동서양의 대가들의 화집이며 전집을 대비시킨(자화상) 일련의 작업들에선 자화상이란 제목처럼 자전적인 경향성이 엿보인다. 


이렇게 작가는 정치적 현실과 자본주의적 현실을,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적 현실과 자전적 현실을 동시다발적으로 살아내는 자신의 다중인격을 표상한다. 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고, 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책을 소재로 한 근작의 주제를 심포지온이라고 명명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유래한 심포지온은 향연과 함께 토론의 기술(변증법?)을 의미한다. 여기서 향연은 말할 것도 없이 책들의 향연이며, 책으로 표상되는 인간의 사유들의 향연이다. 향연이 가능하기 위해선 토론의 기술이 전제되어져야 한다. 토론은 이해를 전제로 하고, 이해는 연민을 전제로 한다. 연민을 파고들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철학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랑(철학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비논리적인)이라는 말이 호출된다. 알다시피 철학은 지에 대한 사랑이다. 철학이 학계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시대에, 그리고 그렇게 삶의 현장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시대에 되새겨볼 말이고 의미이다. 책을 소재로 한 작가의 작업을 접하면서 왠지 행복한 무지라는 말이 맴돈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고, 선문답 같은 일이기도 하다. 

[인쇄하기] 2013-08-15 2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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