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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창 / 투명하고 불투명한 나

고충환

조각과 유리 사이. 통섭과 융합, 현대미술의 화두고 이슈다. 그러나 이 화두며 이슈도 탈의 논리를 전제로 한 개념이며 탈의 논리 이후의 일이다. 장르가 해체되고 형식이 해체된 연후에 재통합되는 것이다. 여기서 재통합이 당연 종전의 총체성의 논리며 자기동일성의 논리로 환원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차이의 논리며 비동일성의 논리로 장르며 형식 개념이 재편되고 있는 것. 여하튼 이런 탈의 논리며 현상이 팽배한 쪽이 특히 조각일 것이다. 어쩌면 조각의 장르 해체며 형식 해체 현상은 설치미술 이후 기정사실화되고 뚜렷해진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그 현상은 심지어 빛(라이트아트)과 소리(소리조각)와 공기(공기조각 혹은 풍선조각) 같은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질료마저 조각의 이름 아래 싸안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론과 실천 혹은 이론과 현실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는 법이다. 직조에 바탕을 둔 조각의 장르적 특수성이 여전히 강력하고 유효한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장르적 특수성과 탈장르 현상이 서로 보충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이런 조각의 장르적 특수성으로 치자면 양감과 불투명성을 들 수가 있겠다. 속이 꽉 찬 불투명한 덩어리가 세계를, 세계의 의미를 자기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속이 꽉 찬 불투명한 덩어리 자체를 자기 내부로 닫힌 형식이며 침묵의 메타포로 볼 수가 있겠고, 따라서 침묵 속에 의미를, 세계의 의미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개인적으로 조각의 매력은 이처럼 침묵하는 질료의 덩어리 속에 세계며 존재의 의미를 보존하고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작가는 유리조각을 대질시킨다. 속이 꽉 찬 덩어리며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덩어리로 정통 조각의 한계를 대리보충하고 있는 것. 조각과 유리조각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 투명성에서 찾아질 수가 있겠다. 이런 대질이며 차이가 가능해진 것은 조각과 유리를 아우르는 작가의 특이한 이력 탓이다. 이런 이력 탓에 작가의 유리조각은 조각의 형식을 견지하면서 조각의 한계를 대리 보충할 수가 있었고, 조각의 경계를 확장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그 자체를 또 다른 탈의 논리며 재통합의 논리, 통섭과 융합의 논리를 실현하거나 예시해주고 있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유리조각으로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확장하고 있는 것.


이런 연유로 작가의 작업은 그 됨됨이나 생리가 유리보다는 조각 쪽에 가깝다. 덩어리(양감)나 환조의 형식을 매개로 공간을 작업의 일부로서 끌어들이는(혹은 확장하는) 것이나, 인물이라는 실체적이고 보편적인 형상을 소재로 한 것, 그리고 더욱이 정통 조각의 주요 문법인 캐스팅(유리의 경우에는 열성형) 기법을 공유한 것이 그렇다. 여기에 작가는 유리 소재 특유의 투명성을 더한다. 이런 투명성 탓에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형상의 내부에 갇힌 비가시적 영역이며 범주(종전 조각에선 암시와 관념을 매개로 추상해야 했던)를 가시의 층위로 끌어올려 그 실체를 엿보게 해준다. 메타포 아래로 잠수해 있던 침묵을 의미의 수면 위로 건져 올린다고나 할까.



이후창, 타자의 시선 II,유리(Cast glass),33_18_67cm


여기서 침묵은 유리 소재와 만나지면서 이중적이고 양면적인(혹은 양가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무슨 말이냐면 유리조형은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숨긴다. 그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지만, 정작 그렇게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것, 바로 그것의 실체를 만질 수도 붙잡을 수도 없다. 여전히 유리라는 단단한 형상(아님 형식) 속에 갇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묵은 자기의 실체를 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를 자기 속에 여전히 보존할 수가 있었다. 하이데거 식으론 진리가 세계에 자기를 내어주면서, 동시에 대지 속에 자기를 보존할 수 있었던 모순율과 이율배반을 실현한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무슨 말이냐면 진리를 내어주지 않으면 진리가 진리임을 알 수가 없고, 진리를 내어주면 그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다. 혹은 한갓 진리의 흔적 내지 증명의 차원으로 변질되고 만다(그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세계와 대지의 변증법은 도가도비상도의 다른 한 버전으로 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렇게 작가의 유리조형 작업은 침묵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침묵의 침묵다움(존재의 존재다움)을 자기 속에 보존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작가의 유리조각은 인간 내면의 침묵(조각에선 형식 혹은 형상 속에 갇혀있었던)을 드러내면서 보존한다. 그럼으로써 침묵의 실체를 실감 있게 전해준다. 나아가 유리 소재 특유의 질료적 성질을 이용해 침묵의 실체를 강화하고 변주한다. 이를테면 서서히 온도를 식히는 서냉과정으로 인해 형태가 결정화된 연후에도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여전히 처음의 액체 상태를 고스란히 보존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결정화된 형태의 속은 투명한 기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마치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흔히 수면(혹은 수중)으로 대리되고 상징되는 심연이며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수면 위로 침묵의 실체를 밀어 올리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작가의 유리조각은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으로서의 이중성과 양면성(그 자체 드러내면서 가두는 혹은 보존하는 유리 고유의 질료적 성질과도 통하는)의 메타포가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메타포는 인간내면의 잃어버린(혹은 잊힌) 본질을 찾는데 맞춰진다.


나와 너, 나와 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일종의 풍경조각으로 부를 만한 집이며 층계와 같은 배경에 해당하는 모티브가 없지 않지만, 작가의 유리조각엔 대개 인물이 등장하고 얼굴이 등장한다. 그리고 얼굴은 단독으로 제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둘 이상의 얼굴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포개지거나 마주본다. 하나의 유리 덩어리 속에 갇혀 있는 이 얼굴들은 내가 나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나를 보고 있는 것도 같고, 타자에 의해 인식된, 그렇게 재차 나에게로 되돌려진 나의 분신을 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나로 분리되고 분열된다. 나는 나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나는 오로지 타자를 경유해서만, 타자의 눈을 통해서만 나를 볼 수 있고 만질 수가 있다. 나는 비가시적 영역에 속하고 불가지의 범주에 머문다. 나를 보고 인식하기 위해선 타자의 시선이 전제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나는 타자를 경유한 인식이며 불완전 인식 속에 갇힌다. 그 갇힘은 깰 수 있는 갇힘인가, 아님 깰 수 없는 갇힘인가. 나는 그 인식의 틀을 깨고 나의 실체를 거머쥘 수가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면이고 심연이고 무의식인가, 아님 강물이고 바다고 수면인가. 얼굴은 나인가, 아님 나를 대리하는 무엇인가. 투명한 유리 덩어리 속에 갇혀있는 무표정해 보이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서로 낯설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얼굴들이 이렇듯 밑도 끝도 없는 존재론적 질문의 바다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후창, 타자의 시선 The Other_s Gazes, 2012, Glass, 34_20_69cm


이처럼 작가의 유리조각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로 분리되고 분열된다. 바로 자기소외다. 작가는 그 자기소외를 상실의 시대라고 부르고 타자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내가 나를 상실한 상태가 자기소외이고, 타자를 경유해서 인식되는 내가 자기소외이고, 내가 대상화시킨 나를 쳐다보는 내가 자기소외이다. 이 도저한 상실감이며 자기소외는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게오르그 짐멜은 자본주의 시대의 물화현상에서 그 상실감이며 자기소외의 원인을 찾는다. 상품화의 논리가 가속되고 팽배해진 나머지 상품의 소비주체인 인간마저 물화되고 상품화되기에 이르고 한갓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나는 상품화된 나와 그처럼 상품화된 나를 쳐다보는 또 다른 나로 분리된다. 그리고 그렇게 분리된 나와 나 사이에 인식의 골(아님 가치의 골?)이 파인다.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에 골이 파이고(마르크스), 효율적인 것과 잉여 사이에 골이 파이고(조르주 바타이유),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이에 골이 파이고(짐멜이 예시했고, 뒤르켐과 발터 벤야민이 계승한 문화지체현상은 자기소외의, 아노미의, 정신적 공황상태의 원인이 된다), 상징계와 실재계 사이에 골이 파이고(자크 라캉), 상징계와 욕망 사이에 골이 파이고(질 들뢰즈), 상징계와 실재의 사막 사이에 골이 파인다(슬라보예 지젝). 그 골 너머로 얼굴과 얼굴이 포개지고 마주본다. 그 얼굴 위에서 나의 시선과 내가 대상화시킨 나의 응시가 중첩된다. 그렇게 너는 또 다른 나였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나는 경제적 주체인가(상품과 잉여인간), 아님 심리적 주체인가(무의식의 바다와 욕망의 덩어리), 아님 사회적 주체인가(페르소나와 제도적 주체), 아님 정치논리의 부산물인가(이데올로기적 주체). 아님 이도 저도 아닌 혹은 이 모두를 아우르면서 넘어서는 혹은 이 모두의 이전에 있었던 강물이며 바다며 수면 같은 자연의 아들(과 딸)인가. 롤랑 바르트는 문명을 자연으로 가장할 때 신화 곧 허구적인 이야기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실체를 부여잡기 위해 자연에도 기댈 수가 없고 자연으로 도피할 수도 없다는 말인가. 도대체 문명에 의해, 인간의 인식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영역과 범주가 남아있는가.


작가의 작업은 바로 진아(불교에서 말하는 나라는 진정한 실체)를 향한다. 그 우여곡절을 투명한 유리의 질료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나는 투명해졌는가. 나라는 실체는 더 또렷해졌는가. 작가의 작업은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있고, 저마다의 개별이며 개체 속에서 묻고 답해질 질문의 바다 속에 던져 넣고 있다. 


[인쇄하기] 2013-07-08 13: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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